숲노래 책숲마실
사람이 짓는 (2021.10.3.)
― 부산 〈우리글방〉
우리나라 책골목은 부산 보수동 한 곳입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책거리는 여럿 있되, 책집으로 마을을 이룬 데는 그야말로 부산 보수동뿐입니다. 일본 도쿄에 ‘간다’가 있습니다만, 도쿄 간다도 ‘책거리’일 뿐, ‘책골목’이지는 않습니다. 온누리에 참으로 드문 책골목인 부산 보수동인데, 정작 부산시·부산 중구청·보수동사무소·부산문화재단은 이러한 책터를 알뜰살뜰 여미는 길에는 하나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채 2021년까지 흘렀습니다.
여러 나라 책거리 이야기를 들며 부산 보수동이 얼마나 엄청난 곳인지 밝히면, 둘레에서는 “아니, 그런데 부산시는 왜 그래요?” 하고 물어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울에 ‘청계천 책거리’가 있을 적에도 마음을 쓴 적이 없습니다. 청계천이 스러져 갈 적에 비로소 ‘얼굴갈이(간판 교체)’만 여럿 했고, 제대로 책살림을 북돋우는 길은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그나마 ‘책집 길그림(책방 지도)’에 돈을 조금씩 댄 고장(지자체)이 차츰 생겼고, 서울에는 〈서울책보고〉를 열었습니다.
부산에는 부산다우면서 부산에만 있는 아름빛이 꽤 많습니다. 다른 고장도 매한가지인데, 정작 고장지기(지자체장)나 벼슬아치(공무원)는 이 대목을 거의 모릅니다. 고장지기는 줄서기로 뽑혔고, 벼슬아치는 ‘책읽기 아닌 셈겨룸(시험)’으로 자리를 꿰찼을 뿐이거든요. 책을 읽은 사람이 고장지기 자리에 앉지 않고, 벼슬아치 일을 맡지 않으니, 부산뿐 아니라 다른 고장도 엇비슷합니다.
보수동 헌책집이 똘똘 뭉쳐서 2005년부터 책잔치를 꾀할 적에 쉰 곳이 넘던 책집이지만, 해가 갈수록 확 줄어들 뿐 아니라, 책골목 한켠은 막삽질(재개발)로 무너졌고, 끔찍하게 시끄럽고 어지럽습니다. 이동안 부산 벼슬아치는 팔짱을 꼈어요.
모든 글은 사람이 짓습니다. 모든 옷밥집은 사람이 짓습니다. 모든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 짓습니다. 글도 책도, 집살림도 나라살림도 ‘수수한 사람’이 짓습니다. 힘·돈·이름이 있는 사람이 글을 짓거나 책을 짓지 않아요. 힘·돈·이름이 있는 이들은 돈장사(상업주의)만 짓습니다. 힘·돈·이름으로 태어난 잘난책(베스트셀러)에 사람들이 쏠릴수록 책마을도 책골목도 빛을 잃습니다.
멀리 보거나 숲을 모르는 이를 안 부르기를 바라요. 곁에 아름다이 흐르는 숨빛을 읽는 이웃하고 마주할 적에 책빛이 피어납니다. 〈우리글방〉을 둘러보며 생각합니다. 이곳을 찾아와서 찰칵놀이만 하고 나가는 젊은이가 많아도 안 나쁩니다. 어디나 구경꾼은 있어요. 구경꾼한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책사랑이한테 마음을 기울이면서 어린이 눈빛으로 이곳을 손수 돌보면 부산은 되살아날 만합니다.
ㅅㄴㄹ
《the Changing face of TIBET》(Pradyumna P.Karan, the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76)
《즐거운 우표수집》(김갑식, 한국우취연합, 2006.3.27.)
《조중사전》(편집부 엮음, 조선외국문도서출판사·중국민족출판사, 1993.2.28.)
《마산시가도》(정일지도, 2000.4.)
《양산시》(정일지도, 2003.)
《縣別道路地圖 46 鹿兒島縣》(昭文社, 1996.1.)
《裝幀談義》(菊地信義, 筑摩書房, 1986.2.25.)
《インテリア》(田中健三, 保育社, 1971.1.5.첫/1975.5.1.두벌)
《藥草裁培》(박재희·정용복, 화학사, 1972.2.5.)
《新版 標準 國語 四年上》(文部省 엮음, 敎育出版株式會社, 1981.4.10.)
《新しい國語 6上》(大石初太郞·阪倉篤義, 東京書籍株式會社, 1972.7.10.)
《동녘 7호》(임우근 엮음, 부산문화회, 1988.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