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뎐 - 위로와 공감의 책방, 잘 익은 언어들 이야기|2021년 출판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선정작
이지선 지음 / 오르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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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2021.12.23.


책집지기를 읽다

4 전주 〈잘 익은 언어들〉과 《책방뎐》



  시골에는 “책집이 없다”고 말할 만합니다. 곁배움책(참고서)을 다루고, 몇 가지 달책을 들여놓고, 잘난책(베스트셀러)을 조금 놓는 책집은 있습니다만, 이 세 가지를 밀쳐내고서 마을살림을 북돋우고자 마음을 기울이는 책집은 드뭅니다. 이 세 가지를 밀쳐내면 장사가 안 된다고도 하지만, 이 세 가지에 기대어 돈을 번다면, 책을 책이라 말하지 못하는 나날을 부채질할 테지요.


  스무 살을 넘어 비로소 가림몫(투표권)을 얻는데, 나고자란 인천이란 고장에서 밀어줄 만한 사람을 아무도 못 봤습니다. 둘레에서는 “덜 나쁜 사람을 뽑으면 돼.” 하고 말하는데, “좋은 사람”조차 아닌 “덜 나쁜 사람”을 뽑으라니, 덜 나쁘건 많이 나쁘건 끔찍하게 나쁘건 똑같이 “나쁜 사람”을 뽑는 셈 아닐까요?


  앞에서는 깨끗한 척하고 훌륭한 척하며 바른말을 하는 척하지만, 정작 뒷돈을 챙기고 뒷짓을 일삼은 사람들이 나라지기·나라일꾼으로 가득가득합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쪽이든 매한가지입니다. 나라일(정치·행정)이란 ‘심부름꾼’이 아닌 ‘법을 내세워 뒷돈 후리기’일는지 몰라요.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서울로 떠나고, 서울을 떠나 충주 멧골에서 살다가, 인천으로 돌아갔다가, 이제 모든 큰고장을 등지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몸으로 돌아보면, 어느 곳이건 마음이 시커먼 이들이 차지하더군요. 시커먼 이들을 안 보고 싶어 책만 파면서 살아가자니 책마을에도 시커먼 이들이 잔뜩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조차 덮고 고요히 숲에 깃들어야 파란하늘에 하얀별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끙끙대며 마을책집을 그럭저럭 다니던 어느 날 전주 〈잘 익은 언어들〉 이야기를 이웃님한테서 들었고, 2019년 12월 8일에 첫걸음을 했습니다. “잘 익은”이란 이름은 책집지기 스스로 “덜 익은” 숨결인 줄 안다는 뜻입니다. “덜 익은” 줄 알아서 “잘 익은” 길을 바라는 사랑을 이름에 담았다는 얘기예요.


  가만히 보면 모든 막짓놈은 스스로 덜 익은 줄 모르는 채 잘난질을 일삼아요. 스스로 덜 익은 줄 알아 “잘 익은” 길을 바라보는 눈빛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다면, 나라지기·나라일꾼이 엉터리일 까닭이 없어요. 잘 익고픈 꿈을 키우는 하루를 갈무리한 《책방뎐》은 마땅히 “덜 익은” 책입니다. 다만, “덜 익은” 책이기에 첫걸음을 내딛고, 차근차근 무르익는 하루를 지으려는 마음을 폅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수다꽃을 짓노라면, 시나브로 잘 익은 마을빛이 씨앗으로 퍼지겠지요.


《책방뎐》(이지선 글, 오르골, 2021.11.22.)


“잉, 전주의 거시기 책방지기는 팔고 싶은 책을 쫙 깔아놓고선, 사람들 오라고 춤도 추고 그런디야!” (17쪽)


“아니, 이 먼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어요? 어찌 이리 불편한 선택을 하셨던 말입니까?” “여기까지 오는 길을 여행한다 생각했어요.” (135쪽)


남들이 ‘책방으로 먹고살기 힘들 거야’라고 여기는 그 관념을 넘어서고 싶다. (205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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