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슬아슬 (2021.8.11.)

― 구례 〈섬진강 책사랑방〉



  두 다리로 살아가기에, 늘 때를 살핍니다. 마을 앞에 언제 시골버스가 지나가는가를 살피고, 이 시골버스로 읍내에 간 다음, 어떤 탈거리로 마실을 다녀올 만한가를 어림합니다. 부릉이를 몰지 않으니 늘 때를 보고, “이러다가 놓치겠구나” 싶어 아슬아슬하게 서두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는 고작 1분을 못 맞추는 바람에 한나절을 꼼짝없이 길에서 서성여야 하거든요.


  낱말책을 지으니, 밑글로 삼을 책을 자꾸자꾸 살핍니다. 여태 건사한 책으로도 어마어마하다는 말을 듣지만, 으레 “글쎄요?” 하고 시큰둥히 대꾸합니다. 여태 읽거나 건사한 책보다는 앞으로 읽거나 건사할 책이 많은 줄 느끼거든요.


  여태까지 쌓은 책꾸러미가 많은들 안 대수롭습니다. 오늘까지 이룬 열매가 커다랗더라도 안 대단해요. 그저 그럴 뿐이고, 늘 새롭게 한 발짝을 디딥니다. 많이 읽었기에 더 잘 알아차리지 않아요. 배움끈이 긴 이웃 가운데에는 외려 눈이 멀거나 눈가림을 하는 분도 꽤 있습니다.


  많이 읽기에 눈이 밝지 않아요. 많이 알기에 눈이 높지 않아요. 많이 했기에 눈이 맑지 않아요. 스스로 밝고 싶다는 마음을 심기에 밝습니다. 스스로 바람이 되어 높이높이 날고 싶기에 높아요. 스스로 빗물이며 샘물처럼 맑고 싶다고 꿈꾸기에 비로소 맑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린이를 살며 놀기에 어린이로서 맑고 밝으며 높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움을 잃거나 잊으면 ‘애늙은이’ 소리를 들으면서 안 맑고 안 밝으며 안 높습니다. 어른·어버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책을 더 읽거나 더 살피거나 더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손발로 지으며 즐거이 나누기에 아름답습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는 이제 집어치웁시다. “즐겁게 아름답게 사랑스럽게”로 오늘부터 함께 천천히 걷기를 바라요. 시골집에서 고흥읍을 거쳐 순천을 지나 구례에 닿아 신나게 걸어 〈섬진강 책사랑방〉에 닿습니다. 닿자마자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서 “얼마쯤 남았나?” 하고 돌아봅니다. 구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느긋이 둘러보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살짝 걸치더라도 고마우면서 즐거워요. 오늘 이곳에서 만난 책을 한아름 짊어지고서 새길을 느긋이 갈고닦자고 생각합니다.


  더 크지 않아도 누구나 책숲(도서관)입니다. 종이(사서 자격증)가 없어도 누구나 책숲지기(도서관 사서)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웃는 어른이라면 모두 책숲이요 책숲빛이자 책숲지기입니다. 오랜 책을 되넘기며 새로운 오늘을 그립니다.


ㅅㄴㄹ


《소년세계위인전기전집 9 안데르센》(루우머 고덴/장경룡 옮김, 육영사, 1975.1.1./1981.1.1.7벌)

《古代의 滿洲關係》(이용범, 한국일보사, 1976.4.25.)

《颱風》(셰익스피어/김재상 옮김, 서문당, 1974.10.1.)

《透明人間》(H.G.웰즈/박기준 옮김, 서문당, 1973.2.10.)

《맑은 눈 고운 마음》(김한룡 엮음, 명성사, 1981.5.10.)

《韓國의 書誌와 文化》(모리스 쿠랑/박상규 옮김, 신구문화사, 1974.5.1.)

《韓國의 山水》(문일평, 신구문화사, 1974.5.1.)

《삼국유사》(일연/김영석 옮김, 학원사, 1989.5.20.)

《비계덩어리》(모파상/방곤 옮김, 서문당, 1972.6.5.)

《꽃 속에 묻힌 집》(이오덕·이종욱 엮음, 창작과비평사, 1979.1.25.)

《이티 E.T.》(윌리엄 코츠윙클/공문혜 옮김, 한벗, 1982.12.5.)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유은실, 창비, 2013.2.15.)

《꿀벌 마야의 모험 외》(본젤스/정성환 옮김, 금성출판사, 1984.1.30.개정신판)

《6학년 3반 청개구리들》(최승환, 편암사, 1988.10.1.)

《현대일본사진가》(와따나베 쯔도무/홍순태 옮김, 해뜸, 1988.3.30.)

《美術과 生活 2호》(이용철 엮음, 미술과생활사, 1977.5.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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