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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16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12.16.
스스로 사랑하는 길
《80세 마리코 16》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1.9.30.
《80세 마리코 16》(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1)을 읽으며 이제 이 그림꽃책 이야기는 마치는구나 싶어 섭섭하면서 반가웠습니다. 조금 살을 붙여 열여덟걸음이나 스무걸음까지 그려도 될 텐데, 그림님은 시원스레 열여섯걸음으로 ‘여든 살 마리코 할머니가 늘 새롭게 걷는 길’을 바라보아 주었습니다.
요즈막에 ‘할머니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제법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조금은 눈을 떴나 싶습니다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할머니 이야기가 눈부시다면 ‘잘난 멋’이 아니라 ‘들꽃처럼 수수하게 빛나면서 품는 사랑’이기에 눈부셔요. 그런데 ‘잘난 할머니(?)’ 책이 꽤 나와 퍽 팔리더군요.
할머니가 할머니로서 아름답다면 ‘아무개 할머니’라는 이름이 아닌 ‘할머니’라는 투박한 말에 이녁 이름을 가린 채 살아왔어도 언제나 아이를 상냥하게 아끼고 돌보며 사랑하는 숨빛을 씨앗으로 물려주는 자리에서 살림꾼이라는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에서 물빛그림을 즐기시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할머니가 남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라는 씨앗처럼, 익산에서 말빛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살림하는 할머니가 품은 《지는 꽃도 아름답다》라는 씨톨처럼,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로서 사랑스럽습니다.
그림꽃책 《80세 마리코》에 나오는 할머니는 참말로 이 땅에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여든한두 살에 ‘글꽃빛(문학상)’을 받은 할머니는 없거든요. 마리코 할머니가 받은 글꽃빛은 대단하다 싶은 줄거리를 펴지 않습니다. 여든 살이라는 나이에 ‘아이들이 살아가는 집을 홀로 떠난 날’부터 ‘버림받아 길에서 헤매는 늙은 고양이를 건사해서, 할머니 스스로도 떠돌이 몸이면서 함께 살아간 길’에다가 ‘늙은이 글은 더 안 싣겠다는 달책(잡지) 일꾼이 따갑게 나무라도 꿋꿋하게 글꽃을 새롭게 밝힌 오늘’을 수수하게 엮은 줄거리라지요.
나이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나이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글빛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이녁은 함께 빛납니다. 글쓴이가 늙어서 싫고 젊어서 좋다고 여긴다면, 이녁은 낡은 마음에 스스로 갇힙니다. 글쓴이가 펴는 이야기에 온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이녁은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에 홀가분하게 서기에 마리코 할머니는 스스로 빛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하고 등진 숱한 사람은 자꾸 돈·이름·힘을 거머쥐려 합니다. 이 그림꽃책에는 ‘바람 피우는 숱한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도 ‘사랑 아닌 바람질’에 얽매이기에 참말로 사랑하고는 동떨어질밖에 없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네가 너 스스로 사랑할 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스스로 사랑하는 둘이 문득 맑고 밝게 마주하기에 새길을 찾아서 맺고, 이때에 아기를 낳습니다. 아무나 ‘어버이’가 되지 않고, 아무나 ‘어른’이라 하지 않습니다. 홀로 즐거이 사랑이기에 ‘어른’이요, 둘이 새롭게 사랑이기에 ‘어버이’입니다. 사랑이 아닌 사람은 모두 ‘늙은이’입니다.
ㅅㄴㄹ
“그렇겠지. 너도 결함주택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거야. 그래, 그래, 아프겠구나. 아픈 거 다아 날아가라!” (21쪽)
“뭐야. 집이랑 대화하는 거야?” “아. 죄송해요. 이상하죠.” “아니. 나랑 똑같다 싶어서!” (26쪽)
“‘돈이 드는 그릇’? ‘족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세 사람 모두 집 문제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역시 집이란 존재는 커요. 그런 집을 코지가, 그 얌전한 아이가 내던졌어.” (31쪽)
“말씀하신 대로 쓸 수 있는 작품 수에 한계는 있겠지요. 60세를 넘어서부터 ‘다음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신은 아직 제게 글을 쓰는 걸 허락해 주고 있어요. 어쩌다 보니 20년을 더 해오고 있네요.” (58쪽)
“그러니까 여길 내 집으로 만들 거예요. 차기작은 여길 다 고쳐서 ‘마리코 하우스’를 만드는 이야기랍니다. 인테리어도 싹 바꾸고, 벽지도 고양이 무늬로 하고.” (61쪽)
“당신의 그 생각은 굉장히 밝고 훌륭합니다. 그대로 밀고 나가길 바라겠어요. 족쇄에 묶이지 않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는 기나긴 인생에 정말 한순간밖에 없으니까요.” (65쪽)
“아들네는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좋은 걸 고른 거예요.” “필사적으로 고른 게 잘못된 거였으니 굉장히 충격이 크겠죠.” (77쪽)
“이 가족은 아직 어딘가에 이어져 있어요. 무너진 게 아니죠. 그러니까 지금 손을 놓는다면 후회할 거야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내 사랑하는 가족의 집. 고치면 아직 쓸 수 있어요.” (138쪽)
“전 여길 원점으로 삼아 다시 출발할 겁니다. 기념할 만한 무대에 걸맞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코지. 인생은 이제부터다!” (139쪽)
#YukiOzawa #おざわゆき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