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다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 2021.12.16.

사랑인가 아닌가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10.25.



  《이치고다 씨 이야기 1》(오자와 마리/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2010)를 오랜만에 되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이 빛은 두고두고 흐릅니다. 이와 달리 장사하는 책은 언제나 장사스럽습니다.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장삿속은 사그라들지 않아요.


  민낯은 틀림없이 불거집니다. 민낯을 감추며 살면 언제까지나 창피도 부끄러움도 감추는 나날입니다. 민낯을 밝혀서 나쁠까요? 민낯은 민낯일 뿐입니다. 얄궂은 짓을 했다면 스스럼없이 털어놓고서 새길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았다면 이 바보짓을 이제 씻고서 새롭게 살아갈 노릇입니다.


  감춘대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긴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털어내려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창피한 지난날을 천천히 달래지요. 씻어내려고 마음을 쓰기에 부끄러운 어제를 하나하나 다독여요.


  그림꽃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푸른별 사람하고 바깥별 사람이 만나서 엮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깥별 사람은 ‘몸’이 없어도 넉넉한 숨결로 살아왔는데, 어느 날 그만 이녁 별이 터지는 바람에 푸른별로 스몄다고 합니다. 몸이 없이 살아가던 바깥별 사람은 죽음이 따로 없고, 밥을 먹을 일조차 없다지요. 순이돌이(여남)로 가르는 겉모습마저 없고요.


  이와 달리 푸른별은 몸뚱이가 있어 밥을 먹고 옷을 입습니다. 순이돌이로 갈라서 짝을 맺으려고 합니다. 바깥별 사람한테 푸른별은 수수께끼투성이에 낯설고, 푸른별 사람한테 바깥별은 얼토당토않거나 믿기지 않는 삶일 만합니다. 이리하여 두 다른 별사람이 이곳에서 서로 다른 몸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다른 마음을 새롭게 읽을 만합니다.


  다만, 둘 사이에 앙금이나 티끌이 없는 맑은 사랑일 적에 마주할 만해요. 이렇게 하면 좋거나 저렇게 굴면 나쁘다고 울타리를 세우면 어느새 엇갈립니다. 돈이나 밥이나 옷을 주기에 사랑이 된다는 터무니없고 바보스러운 생각에 아직 사로잡혀서 살아가나요? 오직 마음을 띄우고 받을 적에 시나브로 사랑이 싹트는 줄 아직 모르는 채 오늘을 맞이하나요?


  오롯이 사랑이기에 빛납니다. 사랑일 적에만 오롯이 빛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거짓에 눈가림에 속임짓입니다. 둘레를 봐요. 삽차로 밀어대는 저 손길에 사랑이 깃들었나요, 아니면 돈을 바라는 생각이 가득한가요? 숱한 나라지기에 벼슬아치에 글바치는 이 땅에서 사랑을 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그들 자리값을 거머쥐면서 이름하고 돈을 움켜잡는 생각에 사로잡힌 마음인가요?


ㅅㄴㄹ


“너, 설마 전엔 고양이였니?” “아, 응. 어떻게 알았어?” “바로 오늘 아침에 들었거든.” “뭐, 말하자면 길긴 한데. 내 고향은 지구와는 다른 공간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라는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다툼도 기아도 없느 평화로운 세계.” “천국?” “아니. 아마 우주 어딘가의 진화한 혹성일걸.” (19∼20쪽)


“기껏 수화 가르쳐 줬는데, 쓸 기회가 없었네.” “응, 하지만 뭐, 급할 거 없잖아?” “그래.” ‘이 아인 어리버리하지만, 중요한 건 파악하고 있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77쪽)


“이치고다 씨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나만 가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이치고다 씨가) 집에 없으면 엄청 충격받을 것 같아. 내 고향 보고 싶지 않아?” (89쪽)


 “슬슬 가야지. 누나가 걱정하겠다.” “정말 그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누나 결혼도 축하해 줘.” “좋은 사람이면 축하해 줄 거야.” “진짜지?” “그럼.” (113∼114쪽)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뭐어? 충분히 수상하잖아. 역시 반대야.” “그냥 질투 아니고?” “당연하지! 아냐. 그런 녀석한테는 누나가 아까워. 누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못 돼.” (133쪽)


“음. 행복해.” “맛있어?” “응. 먹어 볼래?” “마음만 받을게.” (1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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