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온살림 (2021.12.6.)

― 대전 〈다다르다〉



  우리말에서 ‘다’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모두·온’하고 비슷한 ‘다’이지만, 세 낱말은 안 같습니다. 비슷하기에 다릅니다. ‘다르다’라는 낱말은 말밑이 ‘다’하고 ‘달’입니다. 그런데 ‘-다’를 말끝에 붙이면 ‘하다·보다·있다·주다·놀다’처럼 바탕말(기본어휘)을 이루는 뼈대 노릇을 해요.


  누가 ‘다다르다’를 말하면 저는 먼저 ‘닿다’를 그립니다.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닿으려 하는가 하고 생각해요. 이 다음에는 “모두 새롭다 = 다 다르다”를 떠올립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이 낱말책은 “비슷한말이란 다른말이다”라는 수수께끼이자 놀이를 이웃님한테 들려주려는 뜻을 듬뿍 담았어요.


  말결을 더 살피면 ‘다르다’는 ‘닮다’하고 맞물려요. “닮기에 다릅”니다. “다르기에 닮아”요. 언뜻 보면 어긋나다고 여길 테지만, 곰곰이 보면 우리 삶자리를 이루는 실마리하고 속빛이 ‘다르다·닮다’에 있습니다.


  오늘은 충남 홍성까지 가려는 길입니다. 새벽바람으로 고흥에서 나섰고, 순천을 거쳐 칙칙폭폭 달린 다음에는, 버스를 타고 책집 둘레에 내립니다. 서대전나루부터 걸을까 하다가 버스를 타는데, 걷기에는 조금 먼 듯합니다. 부릉부릉 왁자한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호젓합니다. 고작 몇 뼘 떨어진 셈이나, 이곳하고 저곳은 다른나라입니다. 〈다다르다〉에 들어섭니다. 여섯 시간을 들여 이곳에 다다랐습니다. 겨울빛이 스며드는 책집에서 반짝이는 책을 쥐어 펼칩니다. 어느 책을 등짐에 얹어 바깥마실을 하고서 보금자리로 데려가면 즐거울까 하고 살핍니다.


  요사이 ‘제로 웨이스트’가 물결치는데, 껍데기나 겉치레를 치우며 우리 터전을 정갈하게 돌보자는 뜻이라면 ‘제로 웨이스트’ 같은 말씨도 치우면 어떨까요? “쓰레기 줄이기”나 “안 버리기”처럼 수수하게 써도 되고, 마음을 가만히 기울여서 ‘온살림’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우리는 오롯이 살림을 하기에 빛납니다. 옹글게 생각을 가꾸어 오달지게 삶을 누리기에 즐겁습니다. 아직 어설프다면 얼마나 어설픈가를 찬찬히 보면서 천천히 추슬러서 거듭나면 되어요. 글은 잘 써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잘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은 즐겁게 쓰면 아름답고, 책은 즐겁게 읽으면 사랑스럽습니다. 마을은 즐겁게 깃들어 살림을 꾸리기에 빛나고, 우리는 저마다 새롭게 눈뜨면서 만나기에 반갑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쉬운 길이 쉽습니다. 굳이 말을 어렵게 돌리거나 꾸미지 마요. 겉치레를 치우는 ‘온살림’처럼 어린이랑 동무하는 상냥말을 생각해 봐요.


《수어》(이미화, 인디고, 2021.8.1.)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양상규, 블랙피쉬, 2020.9.28.)

《글자를 옮기는 사람》(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1.4.5.)

《월간 토마토 172》(이용원 엮음, 월간 토마토, 2021.11.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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