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펼치면 (2021.10.17.)

― 제주 〈노란우산〉



  어느 책이든 겉으로 스칠 적에는 속내를 못 읽습니다. 어느 책이든 문득 멈추어 손을 내밀어서 집어든 다음에 가만히 펼쳐 하나하나 볼 적에 비로소 읽습니다. 펼치지 않으면 그대로입니다만, 펼치면 새나라로 들어섭니다.


  그림책은 아이가 처음 마주하는 새나라입니다. 아니, 아이는 책에 앞서 풀꽃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새나라를 마주하지요. 아이는 저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품이 첫나라일 테고, 이 첫나라에 머물지 않고 마당으로 놀러나가면서 새나라를 만나는데, 보금자리를 둘러싼 푸르게 우거진 숲은 온넋을 새롭게 깨우고 온몸을 새삼스레 일으키는 바람이 가득합니다.


  보금자리랑 숲이라는 나라를 만난 아이는 그림책을 맞닥뜨리면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꿈날개를 펴는 다음나라로 나아갑니다. ‘첫·새·다음’으로 엮는 나라인데요, 아이는 이 셋을 두루 누리고 품는 사이에 슬기롭게 마음을 다스리고 즐겁게 철들고 노래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제나라(저 스스로 짓는 나라)’로 갑니다.


  그림책을 노래하는 마을책집인 〈노란우산〉에 가볍게 찾아갔습니다. 고갯마루 한켠에 조그마한 알림판으로 수수하게 깃든 〈노란우산〉인데, 디딤돌을 밟고서 들어서니 이렇게나 다른 ‘다음나라’로구나 싶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첫나라는 있되 새나라하고 다음나라를 못 만났습니다. 첫나라에서 냉큼 제나라로 나아간 삶이었고, 스스로 다음나라를 찾아나섰고, 두 아이랑 곁님하고 소꿉살림을 지으면서 차근차근 새나라로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나라를 넉넉히 즐거이 누려야지 싶어요. 이 네 나라를 마음껏 맞아들이면 다섯째로 ‘별나라’에 이른다고 느껴요. ‘별’이란 저 먼 곳에만 있지 않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도 푸른별(지구)입니다. 푸른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하고 이웃 숨붙이는 저마다 자그맣게 다 다른 별(씨앗)입니다.


  스스로 별나라를 깨달으면서 환하게 웃는 하루일 적에는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지 싶습니다. 그냥 태어난 목숨이 아닌, 갖은 길을 치르거나 누비면서 오늘에 이르는 사이에 넉넉한 마음이 된고 할까요. 이윽고 여섯째 ‘온나라’로 날아올라서 어깨동무(평화)란 길을 폅니다. 이러고 나서 마침내 어버이·어른이란 숨빛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옹근 사람으로 깨어나는 ‘빛나라’에 닿겠지요.


  그림책집 〈노란우산〉 골마루를 돌아보면서, 밝게 들어오는 햇빛을 맞이하면서, ‘첫·새·다음·제·별·온·빛’이란 삶길 가운데 어느 께에 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빛나라에 서더라도 즐겁게 첫나라·다음나라로 돌아갈 만합니다.


ㅅㄴㄹ


《엄마의 섬》(이진 글, 한병호 그림, 보림, 2020.5.15.)

《주디스 커》(조안나 캐리 글/이순영 옮김, 북극곰, 2020.9.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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