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10.17. 어깨뼈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자전거를 타다가 부릉이한테 제법 치였습니다. 1995년에 처음 치인 날은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던 그해 가을에 저를 친 사람은 뺑소니였습니다. 그래도 그 뺑소니 부릉이는 저를 쳐서 한 시간을 길바닥에 널브러뜨리고 달아나지 못했다더군요. 경찰이나 구급차를 부르지도 않고 부릉이에 앉은 채 밖에 나와 보지조차 않았다는데, 한 시간 만에 제가 길바닥에서 일어나자 달아났어요. 이때 오른손목·오른발목·오른무릎·오른어깨가 엄청나게 다쳐서 열다섯 해 남짓 몹시 애먹었습니다.
이다음에는 2004년하고 2005년에 또 뺑소니 부릉이한테 치여서 왼팔뚝하고 왼어깨하고 왼무릎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때에도 팔어깨가 머리를 받쳐 주면서 목숨을 건사했고, 그만큼 제 무릎하고 어깨하고 팔뚝하고 손목은 몸앓이를 한참 해야 했습니다.
제주 〈그리고서점〉에서 애월 어린이하고 함께 “노래돌(시비) 따라 걷기”를 했습니다. 어른들은 으레 ‘시비’란 한자말만 씁니다만, 이런 낱말로는 어린이하고 이야기를 못 합니다. 한글로 ‘시비’라고만 하면 어떻게 알아들을까요? 이런 낡은 말씨를 걷어내어야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며 삶을 노래하는 글꽃(문학)을 지피지 않을까요?
노래(시)를 쓰는 어른 가운데 ‘노래돌’이란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인 분을 아직 못 만났습니다. 우리말로 ‘노래돌’이라 하면 “문학적이지 못하다”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문학적’이란 말씨부터 어린이를 등지는 말씨예요. 어린이한테 ‘문학’이 아닌 ‘글’을, ‘삶글’하고 ‘살림글’하고 ‘사랑글’을 들려주면서 ‘꽃글’을 어린이 스스로 쓰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우리가 어른이란 자리에 설 만하다고 생각해요. ‘시비’는 한자말조차 아닌 낡은말이자 고인말, 곧 죽은말이지 않습니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노래돌’이란 이름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이녁 스스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새말을 지어서 쓰시기를 바라요. 죽은말은 이제 그만 버리기로 해요.”
아침부터 낮까지 바닷바람을 품으면서 마을길하고 숲길을 거닐었습니다. 〈그리고서점〉 지기님이 이끌어 〈노란우산〉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시 마을책집을 한 군데 더 들르고서 길손집을 찾아보고 짐을 내리는데 갑자기 오른어깨가 확 저립니다. 부릉이한테 치여 죽다가 살아난,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넋을 잃다가 문득 깨어나서 “난 내가 할 일을 즐겁게 마칠 때까지 살겠어. 난 부릉이한테 치여서 길바닥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이 몸을 되살려내던 일이 떠오릅니다.
몸 어느 곳이 새삼스레 아플 적에는 이 몸을 입은 넋한테 앞으로 나아갈 새길을 마음으로 알려주려고 하는 빛줄기가 스민다고 느낍니다. 고삭부리로 태어나서 말더듬이로 자라다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곁님하고 아이들이랑 시골에서 걸어가는 오늘은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뜻을 푸르게 다시 그리라면서 오른어깨가 욱씩거리지 싶습니다. 몸힘은 몸힘대로, 마음빛은 마음빛대로 찬찬히 돌보면서 제주마실을 누리고서 고흥으로 돌아가자고 거듭 되뇝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