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멧제비나비 (2021.6.26.)

― 대전 〈책방 채움〉



  푸른배움터를 마칠 때까지 인천 바깥으로 갈 일이란 없다시피 했습니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즈음 거의 서울에서 지내며 마음이 맞는 벗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학교 1학년은 신나게 놀아야지?” 하는 말이 아닌 “즐겁게 배우며 새롭게 눈뜨자!” 하고 말하는 벗이 그리웠습니다. 1994년 12월 29일에 〈우리말 한누리〉란 누리모임을 ‘피시통신 나우누리’에서 열었고, 이때 마음벗을 여럿 사귀었습니다. 함께 책집을 다니며 삶·살림·사랑을 이야기하던 벗 가운데 길잡이(교사)를 꿈꾸는 아이는 대전이 텃집이에요.


  대전에 발을 디딜 적마다 지난날 마음벗하고 나눈 말을 떠올립니다. 그때 읊은 말은 겉말이었는지, 오늘까지 고이 흐르는 속말인지 되새깁니다. 스스로 살아가며 살림하고 사랑하려는 길을 그리는 말을 읊는 하루인지 곱씹습니다.


  순천을 거쳐 기차를 타고, 기차나루에서 내려 한참 돌고돌아서 〈버찌책방〉에서 다리를 쉬고서 〈책방 채움〉에 닿습니다. 〈채움〉 책집지기님은 이곳에서 찰칵하는 일을 꺼립니다. 찰칵질만 하고 책은 안 사는 나그네가 너무 많답니다. 구경조차 않고 찰칵놀이에 사로잡힌 분은 꽤 많습니다. 찰칵질이 나쁘다고 여긴 적은 없되, 먼저 마음으로 보고 느껴서 새기는 하루가 아니라면 아무리 찰칵찰칵 쌓아올리더라도 며칠 되지 않아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느껴요.


  마음으로 보고 느껴서 새기고서 찰칵이(사진기)를 손에 쥐면 한두 자락만 찍더라도 두고두고 사랑스레 이야기꽃이 됩니다. 마음으로 보고 느껴서 새기고서 손에 쥔 책을 기꺼이 장만하면, 이 책 한두 자락이 오래오래 우리 빛살림이 될 뿐 아니라 아이가 물려받을 만한 얘깃거리가 됩니다.


  저는 모든 책을 책집에서 읽어 보고서야 삽니다. 그림꽃책(만화책)은 비닐로 친친 감아 놓으니 못 읽고서 삽니다만, 책집에서 죽 읽어 보고서 “그래, 되읽을 만하구나” 싶을 적에 사요. 읽은 책을 왜 사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많아, “한 벌 읽고서 다시 안 읽을 책을 살 까닭이 없어요. 숱하게 되읽을 책일 적에 비로소 살 만하지요. 다만, 사 놓고 되읽으니 어쩐지 아쉽던 책이더라도 말이지요.”


  책집을 나섭니다. 부릉부릉 시끄러운 한길에 서며 버스를 기다리려는데 멧제비나비가 제 몸을 한 바퀴 빙그르르 감돌더니 하늘로 훅 날아오릅니다. “오! 너는 대전 한켠에서도 사는구나! 이 큰고장에 네 날갯짓을 흩뿌리면서 아름다운 춤짓을 알려주는구나!” 나비는 불쑥 찾아옵니다. 나비는 오래오래 애벌레로 꿈을 그린 다음 우리한테 꿈노래를 속삭이려고 찾아옵니다. 나비는 멋스러운 동무요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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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토미 드 파올라/이순영 옮김, 북극곰, 2021.5.10.)

《꽃들의 말》(장프랑수아 샤바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김지희 옮김, 오후의소묘, 2021.6.1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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