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수수께끼책 (2021.7.30.)

― 순천 〈책방 심다〉



  새벽에 눈을 뜹니다. 한여름에 부산마실을 하며 흘린 땀을 돌아보고, 이 길에 장만한 책을 어림합니다. 길손집부터 부전 기차나루로 걷다가 찻길이 워낙 시끄러워 안골로 접어들어 걷자니 이내 저잣골목입니다. 외려 더 시끄럽고 왁자하며 사람이 많습니다. 저잣골목은 깊고 깁니다.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 가게마다 내놓은 과일이나 고기나 살림이 꽤 눅습니다. 고흥 같은 시골은 모두 비싸면서 초라하고, 서울·부산 같은 큰고장은 모두 값싸면서 반짝거립니다. 우리나라는 사람만 서울로 보내는 얼거리가 아니라, 값지고 좋은 과일이며 살림도 서울로 보내는 얼거리입니다.


  시골에 책집이 있다면 시골책집을 드나들겠지요. 저는 마을책집에 어느 책을 시켜서 장만하기보다는 그 마을책집에서 건사한 책을 둘러보면서 마음에 닿는 책을 고르기를 즐깁니다. 책집지기 손길을 느끼려고 책집마실을 합니다. 책집지기가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눈빛을 마주하려고 책집으로 찾아갑니다.


  이제 언제 어디에서나 책을 시켜서 사기가 매우 쉽습니다. 시골이나 섬에서는 누리책집에서 사더라도 서울보다 며칠 걸리지만 이쯤이야 시골스레 느긋이 기다릴 만합니다. 배움책(참고서·교과서)을 치운 마을책집은 책으로 나누고 펴는 삶길을 더 헤아리면서 밝힐 만하다고 생각해요. 빠르게 많이 사고팔 마을책집이 아니라면, 마을이웃 누구나 한결 느긋이 읽고 새기면서 나눌 책을 갖추는 길로 차근차근 가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책집마실을 나서는 이도 매한가지예요. 먼걸음을 하는 나그네는 마을벗입니다. 책집이 깃든 마을하고 사귀려고 먼걸음을 마다 않고서 찾아가거든요.


  우리는 모두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려고 살림을 꾸리고 밥옷집을 지으며 책을 마주합니다. 스스로 하루를 즐겁게 꽃피우려고 손수 글을 쓰고 이웃이 쓴 글을 읽습니다. 글을 쓸 적에는 ‘내 이름값’을 잊습니다. 글을 읽을 적에는 ‘그이 이름값’을 잊습니다. 이름값 아닌 글을 쓰고 읽습니다. 허울 아닌 빛을 쓰고 읽어요.


  순천 〈책방 심다〉는 바야흐로 와온 바닷가에서 〈심다, 와온 책방〉을 연다고 합니다. 책집을 열 적에 꿈꾸던 “바닷가 책집”을 노란 부릉이에 책을 얹어서 아이들하고 바닷마실을 하면서 펼친다지요. 가게를 차려도 책집이고, 바닥에 자리를 깔아도 책집입니다. 100만 자락을 다루거나 팔아도 책집이요, 100 자락을 다루거나 팔아도 책집이에요. 때로는 큰책집을 꾸릴 만하고, 느긋이 작은책집을 꾸리며 노래할 만합니다. 마을찻집에 사뿐히 드나들어 온몸을 쉬듯, 마을책집에 가만히 스며들어 온마음을 달랩니다. 책이라는 수수께끼는 조그마한 빛씨앗에서 비롯합니다.


ㅅㄴㄹ


《꽃으로 엮은 방패》(곽재구, 창비, 2021.2.19.)

《어떤 그림》(본 버거·이브 버거/신해경 옮김, 열화당, 2021.6.1.)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김파카, 카멜북, 2020.6.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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