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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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8.25.

인문책시렁 197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옮김

 까치

 2007.11.5.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월터 아이작슨/이덕환 옮김, 까치, 2007)는 뭇사람한테 훌륭하다고 떠받들리는 아인슈타인을 놓고서 차분하게 이녁 삶을 짚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으면서 꾸밈없이 바라본다면, 삶과 빛을 새롭게 느끼거나 헤아릴 만하다는 줄거리입니다.


  어느 누구를 보아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어느 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다 보면, 그만 그이 흉허물조차 빛나거나 아름답다고 여기더군요. 어느 한 사람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다 보면, 그만 그이 빛살마저 내치거나 배우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높지도 낮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이 나름대로 삶을 지으며 하루를 누립니다. 아인슈타인이라면 이녁 삶길을 스스로 갔겠지요. 이바지한 일도, 어설프거나 얄궂은 일도, 뛰어난 일도, 모자라거나 못난 일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이 이룬 열매를 받아먹거나 나누면서 배웁니다. 또는 이 열매를 바탕으로 이 너머를 헤아립니다. 우리가 손수 짓는 열매로도 새롭게 하루를 누리거나 몸마음을 살찌워요. 두 길을 나란히 살피기를 바랍니다. 이웃한테서 배우며 나누는 길이 하나라면, 우리 스스로 지는 사이에 배우며 나누는 길이 둘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사람이라는 몸이 빛나지 않습니다. 두 갈래를 나란히 품기에 비로소 사람이라는 마음이 빛납니다.


  흉허물은 덮으면 고름이 되어 썩습니다. 흉허물을 드러내면 꽤 쓰라리거나 아플 만하지만, 쓴맛도 아픔도 슬픔도 몽땅 견디거나 받아들이면서 어느새 새살이 돋고 아뭅니다. 잘 할 적에는 “잘 했구나” 하고 깨닫고, 잘못을 할 적에는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기를 바라요. 두 마디 말을 모두 스스로 하고 받아들이며 녹여낼 적에 비로소, 우리 누구나 온누리(우주)요, 별이며, 씨앗이고, 숲인 줄 온마음으로 알아보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어느 날 페르네는 아인슈타인에게 의학이나 법학 같은 분야 대신 물리학을 전공한 이유를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더 재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물리학에서 운을 시험해 보면 안 됩니까?”라고 대답했다. (60쪽)


그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본능이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당신처럼 나에게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내 부모님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81쪽)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나는 정말 강의를 잘 하지 못했다. 내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고 한탄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앉아서 강의를 들은 클라이너는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강의 기술이 선생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냉정하게 자신은 그런 자리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192쪽)


그러나 자신의 인기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거부감은 사실이라기보다 이론에 더 가까웠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터뷰, 발표, 사진 촬영, 공개 행사 참석 등을 쉽게 거절할 수 있었다. 정말 대중의 주목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찰리 채플린의 화려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326쪽)


그는 그 책에서 좌익이나 우익 모두에서 무도한 정권이 초래하는 명백한 교훈을 보았다. 그는 레빈에게 보낸 찬사의 편지에서 “폭력이 폭력을 낳습니다. 자유는 모든 진정한 가치의 개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초입니다”라고 했다.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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