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들이 새롭게 (2021.5.13.)

― 서울 〈신고서점〉



  제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우리 집 아이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손에 책을 쥘 적에 “어느 해에 나왔는가”를 안 따집니다. “누가 썼는지”나 “어느 곳에서 펴냈는지”도 거의 안 봅니다. 그저 손에 쥔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읽으려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늘 어린이한테서 배워야 할 노릇이요, 책을 마주하는 눈빛도 어린이한테서 배울 일이라고 여겨요. 다만, 쥠새는 어른이 어린이한테 찬찬히 짚어 주어야겠지요. 책이며 종이가 안 다치도록 쥐고서 가볍게 넘기는 손길은 어린이가 어른한테서 배울 대목입니다.


  서울에 계신 이웃님이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서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서울에서는 버스·전철·자전거나 두 다리로만 다녀 버릇해서 자동차로 움직이자니 무척 낯선데, 생각보다 빠르군요. 열두 시 언저리에 달렸기에, 또 서울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인 터라 덜 막히지 싶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갈 버스때를 어림하면서 골마루를 돌다가 《최선 컬러학습대백과》 열 자락을 봅니다. 묵은 책이지만 단출하게 담은 글·그림이 아이들한테 이바지하겠다고 느낍니다. 다만 1981년에 계몽사는 일본 책을 베끼고 훔쳐서 이 책을 엮었어요. 어릴 적에는 몰랐고,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그분들(엮은이·펴낸이)은 이 민낯을 뉘우친 적 있을까요?


  오늘 바라보자면 “묵은 책”이나, 오늘을 잊고서 책으로만 보자면 “책이 태어나고 그무렵 사람들이 마주하던 살림새를 읽는 길잡이”입니다. 1978년에는 이러한 책을 즐기고 엮었구나 하고, 1987년에는 이런 책을 내고 읽었구나 하고, 1970년에는 이런 책을 주고받거나 책숲(도서관)에 건사했구나 하고 돌아봅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뒷사람이 물려받습니다. 우리가 읽는 모든 책도 돌고돌아서 헌책 한 자락으로 아이들이 이어받아요. 오늘 쓰는 글에 어떤 하루를 담으며 아이들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읽는 책으로 어떤 하루를 배워서 아이들한테 이어줄 만한지 되새깁니다.


  서른 해나 쉰 해 뒤에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 젊은 눈빛이 된 사람들한테 어떤 씨앗을 남기려는 글과 책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먼 앞날뿐 아니라 바로 오늘부터 안 즐겁고 안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글쓰기나 책읽기는 “눈치를 볼 일”이 아니되 “아이들을 볼 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를 비롯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읽을 글이요 책이라고 또렷이 깨달으면서 글줄과 책자락을 여미어야 비로소 어른이요 어버이라 하겠지요. 1991년에 나온 ‘노동소설’을 읽다가 쓸쓸히 덮습니다. ‘일하고 살림하는 목소리’가 아닌 ‘싸움하는 머리띠’만 넘실거렸군요.


ㅅㄴㄹ


《헤밍웨이 서한집》(칼로스 베이커 묶음/이지현 옮김, 예유사, 1981.11.10.)

《철강지대》(정화진, 풀빛, 1991.3.13.)

《韓國 歷代 名詩全書》(문헌편찬회·이병두 옮김, 문헌편찬회 출판부, 1959.2.15.)

《Reader's Digest 1977.3.》(Reader's Digest, 1977)

《Reader's Digest 1978.3.》(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6.》(Reader's Digest, 1978)

《Reader's Digest 1978.11.》(Reader's Digest, 1978)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이면우, 창작과비평사, 2001.10.10.)

《기형도 산문집》(기형도, 살림, 1990.3.1.첫/1996.9.20.21벌)

《이단 종교 비판》(고든 알 루이스/김진홍 옮김,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1972.7.10.)

《週刊朝鮮 937호》(안병훈 엮음, 조선일보사, 1987.3.8.)

《BASEBALL 20호》(하일성 엮음, 인준미디어, 1997.11.1.)

《相對性原理》(제임즈 코울먼/박봉렬 감수, 현암사, 1970.9.25.)

《최신 컬러학습대백과 1∼10》(편집부, 계몽사, 1981.4.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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