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침을 여는 빛 (2021.7.17.)

― 제주 〈주제 넘은 서점〉



  곽지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이하지만 바다를 보러 나가지는 않습니다. 오늘 자전거로 달릴 길을 어림하면서 어제 하루 제주에서 보낸 자취를 바지런히 갈무리합니다. 등짐은 아직 묵직합니다. 무게를 못 줄인 채 자전거에 앉아 땡볕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오늘은 하가마을을 거쳐 제주시까지 달릴 생각입니다.


  자동차가 안 다닐 만한 길을 찾아서 달리자니 어느새 오르막입니다. 그래요, 한라산을 바라보며 달리니 내리막 없이 영차영차 합니다. 훅훅 가쁘게 숨을 고르면서 땡볕 오르막을 넘고 다시 넘다가 바야흐로 〈주제 넘은 서점〉이 깃든 마을에 닿습니다. 그러나 책집을 못 찾고 더럭초등학교 앞으로 갔다가 못가를 돌았어요.


  틀림없이 이 둘레인데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집을 하나하나 보다가 아주 조그맣게 선 알림판을 봅니다. 옳거니, 수줍고도 조그맣게 붙인 글씨로구나.


  이곳 〈주제 넘은 서점〉은 아침책집입니다. 아침 여덟 시∼열두 시 사이에 열어요. 그 뒤로는 책집지기님이 다른 일을 보러 나가신다지요. 아침 열두 시에 닫기에 오늘은 아침에 쓸 글을 허둥지둥 매듭짓고서 달렸습니다. 책집 앞에서 땀을 들이고 손낯을 씻습니다. 바람을 쐬고 햇볕에 땀내음을 말립니다. 다시 손낯을 씻고서 드디어 들어섭니다.


  살림집하고 책집이 맞붙은, 아니 살림집 한켠을 책집으로 꾸민, 포근하면서 멋스러운 책샘터로구나 싶습니다. 마을 한켠이나 골목 안쪽에 깃든 책집은 ‘쉼터’라면, 이곳처럼 여민 책집은 ‘샘터’라고 느낍니다. 책집지기님 손길이 닿은 책으로 가득한 마루하고 책시렁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이제야 책집으로 품을 들여 마실을 하는 몸차림을 익히는 새날로 접어든다고 할 만합니다. 작은마을이며 배움터 둘레로 작은책집이 몇 군데씩 있던 지난날에는 책집마실을 생각한 사람이 드물었어요. 책집이 빠르게 사라지던 1990∼2010년 사이에도 굳이 책집마실을 하려는 분은 안 많았습니다. 이동안 숱한 마을책집은 조용히 버티며 책빛을 바라보았어요.


  누리책집이 엄청나게 늘고 판을 키운 오늘이 되고서야 비로소 손전화를 끄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 마을책집으로 조용히 찾아가서 호젓이 하루를 누리며 등짐을 묵직하게 채우는 이웃님이 천천히 늘어납니다. 책집을 찾아가는 길은 “책만 찾아나서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책집이 깃든 마을을 새롭게 만나려는 걸음”입니다. 왜 이 마을에 이 같은 책집을 여는가를 몸으로 읽고, 왜 이곳에 이 책을 갖추는가를 마음으로 느껴, 책 한 자락을 사랑으로 읽는 숨결을 처음부터 새롭게 생각하려고 책집마실·책숲마실을 할 테지요. 이다음엔 더 일찍 찾아와야겠어요.


ㅅㄴㄹ


《안나는 고래래요》(다비트 칼리 글·소냐 보가예바 그림/최유진 옮김, 썬더키즈, 2020.7.1.)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김서정 옮김, 미래아이, 2021.6.30.)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방》(히구치 유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1.3.15.)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밥 엑스타인/최세희 옮김, 현대문학, 2019.4.30.)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숲노래·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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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8-1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제 넘은 서점
위트있는 중의법
너무 예쁘네요
습기와 소금기에 책이 걱정되긴 하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숲노래 2021-08-16 10:50   좋아요 2 | URL
아침 일찍 열고 12시에 닫기에
부지런히 나들이해야 하는 곳인데
찾아가 보시면
깜짝 놀랄 만큼 곱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