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빛 2021.7.31.

숲집놀이터 258. 더 자주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하고 말을 섞은 일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국민학교를 다니며(1982∼1987) 학기마다 설문조사를 손을 들어서 했는데, 이 설문조사 가운데 하나는 “부모가 둘 다 있느냐, 어머니만 있느냐, 아버지만 있느냐”에다가 “어머니하고 하루에 얼마나 얘기하느냐, 아버지하고 하루에 얼마나 얘기하느냐”도 있었다. 담임이라는 이는 “아버지하고 하루에 한 시간 얘기하는 사람? 아버지하고 사나흘에 한 시간 얘기하는 사람? 아버지하고 한 주에 한 시간 얘기하는 사람? 아버지하고 한 달에 한 시간 얘기하는 사람? 아버지하고 한 해에 한 시간 얘기하는 사람?” 따위까지 물었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안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무렵 ‘국민학교 교사’로 일한 분이지만, 막상 이녁 아이하고 ‘한 해 한 시간은커녕 한 해 1분, 아니 한 마디쯤만 말을 섞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분(우리 아버지)이 잘못이었을까? 글쎄, 아니라고 본다. “더 자주·더 오래·더 많이” 말을 섞거나 눈을 마주쳐야 어버이(또는 어른)는 아니라고 느낀다. 아이하고 지내는 틈이 매우 적거나 없다시피 하더라도 어버이(또는 어른)로서 잘못(죄책감)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이하고 눈을 마주치며 말을 섞는 아주 짧은 틈이라 해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즐겁게 노래하면 된다. 아이들은 다 안다. 어버이(또는 어른)가 사랑인지 아닌지를. 사랑이 아니라면 하루 열 시간 마주하는 틈이 괴로울 테고, 사랑이라면 열 해에 1분만 마주하더라도 기쁘기 마련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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