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답게 그리고 (2021.7.16.)

― 제주 〈그리고 서점〉



  애월 어린이를 앞에 두고서 제주에 여럿 있는 ‘폭포’란 무엇일까 하고 물어봅니다. “쏟아지는 물이요!” “‘쏟아지는 물’을 어떻게 줄여 볼 만할까?” “음, ‘쏟물’?” “네, ‘쏟물’이겠지요. 말은 이렇게 줄여요. 그런데 ‘쏟물’은 소리내기 좀 어렵지 않나요?” “네.” “우리말은 소리내기 어렵지 않아요. 옛날부터 쓰는 말은 모두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알아채고 소리내어 쓰도록 지었어요. 그러면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지요. ‘물’은 어떻게 엮은 낱말인가요?” “물이라면 ‘무 + ㄹ’?” “네. 그러면 ‘쏟물’은?” “어, 그러면 ‘쏠물’?” “맞아요. 오랜 옛날부터 우리가 스스로 가리키던 쏟아지는 물이란 ‘쏠’이에요.” “우와, 신기하다.” “이제 거꾸로 생각해 볼게요. ‘쏠’이라는 우리말이 ‘폭포’를 가리킨다고 알려주면 알기 쉽겠어요? 아마 외워야 할 테고, 외워도 이내 잊기 쉬워요. 그렇지만 ‘쏠’이라는 낱말이 어떤 뜻이며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말뜻하고 말밑을 헤아려서 파고들면 외울 까닭이 없고, 되게 쉬우며 누구나 알아챌 만해요. “쏟아지는 물”을 줄여서 ‘쏟(쏘) + 물(ㄹ)’이거든요.” “네.” “어린씨한테 다른 낱말을 들어 볼게요. ‘쏘다’나 ‘쏘아붙이다’가 있어요. 벌이 쏘고 말을 쏘아붙인다고 해요. 총을 쏜다고도 하고요. 이 ‘쏘·쏟’은 세면서 빠르게 흐르는 결을 나타낸답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솟·소’도 있어요. ‘솟다·솟아오르다·샘솟다’ 같은 얼개로 나타나는데, 이처럼 말밑을 하나씩 짚으면 사람들이 예부터 어떻게 살면서 생각하고 말을 짓고 나누었는가를 알 만해요.”


  다른 하나를 들어 봅니다. “어린씨 여러분한테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지요?” “네! 맨날 시켜요!” “‘심부름”이란 뭘까요?” “시키는 일?” “네. 시킨다고 해서 심부름이에요. ‘시-’가 붙잖아요. 짐을 싣는다는 ‘싣다’나 힘들거나 괴롭다는 ‘시달리다’도 ‘시-’가 맞물려요. 곧 심부름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남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몸짓이에요. 이와 달리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 있어요. 뭘까요?” “음.” “‘일’이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몸짓이에요. 오늘날 삶터(사회)에서는 ‘일’이 품는 밑뜻하고 동떨어져 버리고 말았는데, ‘일 + 다’를 생각하면 쉬워요. ‘일다·일어나다’는 물결이 일고 바람이 이는 길, 아직 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태어나거나 오르는 몸짓이랍니다. 그래서 ‘심부름’하고 달리 ‘일’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이루려는 길이에요.“


  말밑은 먹물붙이(학자) 노닥거림이 아닌 어린이 눈빛으로 살피고 찾고 느끼고 나누면서 생각을 스스로 북돋우는 말샘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서점〉이 깃든 애월에서 애월 어린이들 반짝이는 눈빛에 제 말샘도 빛났습니다.

















ㅅㄴㄹ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구본형, 휴머니스트, 2013.7.15.)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2021.6.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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