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8 흰밥 누런밥



  우리 삶을 책으로 갈무리해서 나누기에 책을 펴면 우리가 미처 겪거나 보거나 알지 못했던 일을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그러나 책에 적힌 삶은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살아낸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는 분이 꽤 늘었으나 모든 삶이 종이책으로 태어나지 않고, 삶을 책으로 풀어내어도 온자취를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다른 책(자료)을 바탕으로 자취(역사)를 살피기 일쑤인데, “글로 안 적힌 자취”가 허벌납니다. 거의 모두라 할 삶은 글(책·자료)로 안 남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남을까요? 바로 몸뚱이에, 마음에, 생각에, 말에 남지요. 다른 글(자료·기록)을 바탕으로 새글(새책)을 쓴대서 나쁘지 않습니다만, 다른 글을 넘어 이웃 살림·삶·자취·눈물웃음·노래·일놀이에다가 숲을 두루 헤아릴 노릇입니다. 이렇게 헤아리지 못하기에 ‘흰밥·누런밥’ 같은 말을 모르지요. ‘백미·현미’라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싸움판(군대)에서는 순이(여성)만 노리개로 삼지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순이를 노리개로 사지만, 돈이 없으면 돌이(남성)를 노리개로 삼아요. 그나마 “순이 노리개(이성 성폭력)”는 조금 불거집니다만 “돌이 노리개(동성 성폭력)”는 거의 못 불거져요. 글보다 삶을 읽고 밝혀야 삶을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추스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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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꾼, 아니 어떤 "지식 권력자"가

"남성 위안부는 없다" 하고 글을 쓰기에

어쩜 이렇게 삶과 살림과 자취도 모르며

글을 함부로 쓰는가 하고 놀랐다.


그러나 삶과 살림과 자취도 모르기에

글을 함부로 쓰겠지?


그 "지식 권력자"는 우리나라를

"안티조선인 사람"과 "안티조선이 아닌 사람"으로

갈라서 보고

이 틀에 스스로 갇히면서 "지식 권력"을 펴더라.


스스로 "살림꾼"이라면 틀을 가르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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