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봄꽃 곁에서 (2021.4.24.)
― 구미 〈책봄〉
여름에 여름꽃이 가득합니다. 꽃은 늘 핍니다. 가을에 가을꽃이 곳곳에 흐드러집니다. 겨울에 겨울꽃이 있고, 봄에 새롭게 봄꽃이 있어요.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을 만납니다. 시골에서도, 멧골이나 숲에서도,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다 다르게 스스로 빛나는 꽃을 보고서 다갑니다.
모든 푸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잎도 다 다른 때에 돋아요. 차근차근 돌아가면서 푸르게 빛나는 풀꽃나무이듯, 우리 곁에 있는 책도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살림을 지으면서 다 다르게 사랑을 길어올려서 다 다르게 엮은 이야기로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이 다 다른 책을 건사하는 책집까지 다 달라요.
모든 책집이 똑같이 생긴다면 메마릅니다. 다 다른 아이한테 똑같은 옷을 입힌다면 끔찍합니다. 길들이기잖아요.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책집인데 똑같은 책만 다룬다면 나눔길이 아닌 굴레나 쳇바퀴일 테지요. 구미를 사랑하는 〈책봄〉은 책으로 봄꽃이 되고, 책을 보는 우리 눈빛을 꽃내음으로 북돋우지 싶어요.
여러 고장을 돌고돌아 책집 앞에까지 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들여다보고서 느긋하게 들어섭니다. 고흥에서도 보는 꽃이요 서울에서도 만나는 꽃이지만, 책집 앞에서 만나는 꽃은 바로 오늘 여기에서 새롭게 만나는 숨빛입니다.
요새는 집을 높다라니 짓고서 부릉이(자동차)를 둘 자리를 넓게 마련하는데, 부릉이한테는 귀퉁이를 조금만 떼어주고서 빈터하고 풀밭하고 숲정이한테 넓게 내어주면 좋겠어요. 땅바닥이라 할 1층에는 차댐터를 못 두게 하고 모조리 풀꽃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봄꽃이 있으면 종이책은 없어도 되더군요. 여름꽃이 있으면 글을 안 써도 넉넉하더군요. 가을꽃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즐겁고, 겨울꽃이 있으면 배움터란 부질없어요. 들풀과 들꽃과 나무와 새와 풀벌레를 저마다 온(100) 가지씩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마을하고 보금자리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푸짐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서 풀꽃나무에 새에 풀벌레가 모조리 터를 빼앗기면서 우리가 저마다 즐거이 짓던 이야기가 갇히거나 사라질는지 몰라요.
동그란 책상에 앉아서 창밖 햇빛을 바라봅니다. 햇볕을 듬뿍 머금는 노란꽃을 지켜봅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도 책집 앞 들꽃을 보면서 웃어요. 어른들은 너무 빨리 걷느라 꽃을 더 보고 싶은 아이를 자꾸 잡아끌지만, 문득 멈춰 봐요. 들꽃을 같이 보고서 책집에 나란히 들어와 봐요. 봄내음이 물씬 흘러요. 부릉이를 달포나 몇 해쯤 멈춰 볼까요? 두 다리로 사뿐히 걸어서 책집에 찾아가 봐요.
ㅅㄴㄹ
《이해받지 못할 글들의 조그만 어휘집》(유경, 유영, 2020.11.20.)
《결혼 탈출》(맹장미, 봄알람, 2021.3.29.)
《여우 달리기》(방새미, 2018.10.22.)
《Here's Your Spring》(책봄, 20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