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자랑스런 예순다섯 해 (2021.3.4.)

― 춘천 〈명문서점〉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그 고장에 책집이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그 고장에서 가까이 마실할 책집을 헤아립니다. 헌책집이든 새책집이든 어떤 책집이 그 고장에 깃드는가를 살펴요. 그 고장 책집으로 마실할 적에는 으레 걷습니다. 제 삶자리에서 그 고장까지 버스에 기차를 갈아타면서 돌고돈 끝에 비로소 하늘숨을 쐬는 나루(터미널·역)부터 천천히 걸어요. 이때에 큰길로 잘 안 걷습니다. 일부러 골목이나 샛길로 돌아요. 5∼10분이면 갈 곳을 30분을 들여서 거닐고, 20분쯤 걸어갈 만한 길을 애써 1시간을 들여서 빙 돕니다.


  책집 한 곳을 둘러싼 마을을 헤아립니다. 마을에서 책집을 어떻게 마주하는가를 느낍니다. 마을에 풀꽃나무가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살펴요. 하늘을 찌를 듯이 잿빛집을 높이는 마을인지, 나즈막한 골목집마다 마당이며 꽃밭을 가꾸면서 꽃그릇을 길가에 내놓고서 짙푸르게 숲빛을 품으려고 하는 마을인지 둘러봅니다.


  꽃그릇 하나 없거나 마당나무 한 그루 없는 마을이라면, 이곳 이웃은 두 손에 책을 쥘 말미를 내기 어렵구나 싶습니다. 들꽃이 한들거리고 철 따라 온갖 나무가 가벼이 춤추는 마을이라면, 이곳 이웃은 문득 책 한 자락 손에 쥐고서 삶을 곰곰이 새길 줄 아는 어질며 상냥한 숨빛이로구나 싶어요.


  2021년까지 예순다섯 해를 헌책집지기로 살림을 이은 〈명문서점〉에 들어섭니다. 춘천에 드문드문 마실한 지 열대여섯 해이지만 막상 〈명문서점〉까지 찾아들지 못했어요. 가까이 있던 〈경춘서점〉에 먼저 들렀다가 주머니가 다 털렸거든요. 〈경춘서점〉에서 주머니가 다 털린 그날 밤 생각하지요. ‘이다음에 춘천에 오면 〈명문〉부터 들러야 두 곳 모두 들르겠지’ 하고요.


  두 마을책집은 춘천에서 매우 오래도록 책내음을 퍼뜨렸습니다. 〈경춘〉은 이제 책집을 접었습니다만, 〈명문〉 할머니는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책을 거느려요. 예순다섯 나이가 아닌 ‘예순다섯 해 책길’을 춘천시나 강원도나 이 나라는 얼마나 헤아릴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책살림 한길을 걸은 지기님 아닐까요? 춘천은 〈명문〉 하나만으로도 온나라에 으뜸 책고을로 이름을 펼 만하지 않을까요? 돈벌이에만 눈먼 ‘중국사람거리(차이나타운)’를 때려짓지 말고, 수수하면서 곱게 빛나는 꽃봉오리 같은 마을책집을 눈여겨보면 좋겠습니다.


  봄날에도 흰눈이 푸짐푸짐 쌓인 춘천에 마실한 오늘, 봄빛을 담은 책을 만납니다. 책에 앉은 더께는 착착 닦아내면 됩니다. 묵은 만큼 이야기가 빛나고, 오랜 만큼 새롭게 캐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ㅅㄴㄹ


《하늘의 절반》(클로디 브로이엘/김주영 옮김, 동녘, 1985.5.30.)

《삐아제의 認知發達論》(B.J.완스워즈/정태위 옮김, 배영사, 1976.1.10.)

《테니스 룰 핸드북》(久保圭之助/장원 옮김, 창작사, 1974.10.15.)

《내가 마지막 본 파리》(피츠제럴드/김량식 옮김, 문공사, 1982.3.1.)

《世界의 名作 29 황금의 손길 外》(조운제 옮김, 중앙일보, 1977.4.10.)

《빛과 사랑을 찾아서》(三浦綾子/백승인 옮김, 설우사, 1976.10.30.)

《핵심 영어 단어장》(편집부, 시사문화사, 1984.1.25.)

《알기 쉬운 월별농사기술》(이효근, 마을문고본부, 1975.12.10.)

《농촌극 입문》(하유상, 마을문고본부, 1976.9.26.)

《미네르바 22 소년과 물고기》(막스 벨쥬이스/편집부 옮김, 한국프라임, 1998.)

《거장과 마르가리따 상·하》(미하일 불가꼬프/박형규 옮김, 한길사, 1991.9.25.)

《韓國近代人物의 解明》(이이화, 학민사, 1985.12.20.)

《북한 논리퀴즈》(위형복 엮음·이영식 그림, 다다미디어, 1994.7.5.)

《自我槪念과 敎育》(W.W.퍼어키/안범희 옮김, 문음사, 1985.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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