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들꽃을 (2021.4.22.)

― 공주 〈느리게 책방〉



  시외버스를 타고 공주에 옵니다. 고흥에서는 광주를 거쳐서 오는 길이 있군요. 돌고돈다지만 서울을 안 거치고 여섯 시간 남짓이면 됩니다. 버스나루에서 어떻게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걷습니다. 어느 고장이든 두 다리로 느긋이 걸어야 마을빛을 느끼면서 사귑니다. 처음에는 늘 걷고, 다음에는 시내버스를 타며, 이윽고 택시를 타요. 여기에 자전거를 더하면 마을 곳곳을 새삼스레 헤아릴 만합니다.


  버스나루부터 〈느리게 책방〉까지 걷자면 어른걸음으로 40분입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냇빛을 누립니다. 길가에 드문드문 오르는 들꽃을 만납니다. 바쁘지 않다면 들꽃한테 손을 내밀어 봐요. “우리를 반기려고 이렇게 피었구나?”


  공주 시내를 걸으며 어쩐지 낯섭니다. 여태 어느 고장도 이렇게 거님길에 자동차가 없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님길이 꽤 넓어요. 거님길에 함부로 올라선 자동차가 드물 뿐 아니라 거님길이 넓으니 천천히 두리번거릴 만합니다. 다만 자전거로 놀러온 분이 갑자기 씽씽 달리니 때때로 아슬아슬합니다. 부디 자전거는 거님길 아닌 찻길에서 알맞게 달리면 좋겠습니다.


  공주우체국이 곁에 있고, 푸름이가 깔깔거리면서 지나가고, 해가 환하게 스며들고, 조용조용한 〈느리게 책방〉입니다. 하기는, 책집이라면 어디나 조용하지요. 바깥에서 퍼지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가리면서 책이라는 새길에 오롯이 스며들도록 북돋우지요. 오늘 이곳으로 찾아오며 세 가지 버스를 타는 동안 ‘숨은책’이라는 노래꽃을 썼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기에 숨은책이고, 앞으로 피어날 테니 숨은책입니다. 우리가 손에 쥐어 넘기는 모든 책은 숨은책이지 싶습니다. 우리 눈길을 기다리면서 숨은책입니다. 우리 마음이 닿기를 꿈꾸는 숨은책이에요.


  온누리 모든 책집은 숨은책집이겠지요. 우리 발걸음이 닿기를 기다리는 숨은책집이면서, 우리 숨결을 살짝 드리우면서 하루를 돌아보는 숨은책집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넘기다가, 골마루를 찬찬히 거닐면서 햇빛을 살피다가, 문득 이곳에 오랜 여닫이짝 둘이 안팎에 있는 줄 깨닫습니다. 열고 닫는 구실을 하던 틀은 흙으로 돌아갈 뻔하다가 책집을 알리는 얼굴이 되고, 책집 한켠을 지켜보는 눈길이 됩니다. 열기에 들어가고, 닫기에 쉽니다. 열면서 마음을 틔우고, 닫으면서 꿈을 그립니다. 갓 열고 들어서면서 새빛을 담고, 막 닫고 돌아서면서 새걸음을 딛습니다.


  다 다른 들꽃이 물결처럼 모여서 들이 되고 숲이 되며 푸른별을 이룹니다. 들꽃 하나는 조그맣기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옹기종기 빛납니다. 여러 가게 사이에 느긋이 마을책집이 깃들어 봄을 밝히는 들꽃빛이 됩니다.


ㅅㄴㄹ


《책갈피의 기분》(김먼지, 제철소, 2019.4.29.)

《스님과의 브런치》(반지현, 나무옆의자, 2020.6.23.)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남해의봄날, 2019.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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