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뭘까 : 때로는 아침부터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둘레에서 쓰는 말로는 ‘비추천’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얄궂책·거짓책·말썽책·나쁜책·몹쓸책·손사래책’처럼 다르게 이름을 붙여 본다. 어느 책은 얄궂고, 거짓스럽고, 말썽을 일으키고, 그저 나쁘고, 몹쓸 이야기이며, 손사래를 칠 만하더라.


그러나 내 눈과 삶과 자리와 숲으로 볼 적에만 얄궂책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책을 좋아할 수 있어도 좋겠는데, 나로서는 싸움연모(전쟁무기)를 안 좋아해도 싸움연모를 좋아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찾기도 한다. 아무리 말썽을 일으키고 응큼짓을 저질렀어도 이런 치를 믿거나 따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거짓을 담은 책이지만 정작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고, 나쁜짓을 일삼고도 그저 이름값으로 장사를 하는 책이 있다. ‘아름책’이 아닌 ‘얄궂책’이 판친다고 해서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이런 삶터가 되는 탓에 글 한 줄을 놓고 ‘글치레·글멋·글꾸미기·글만들기’가 판친다. ‘등단’이란 이름으로 수수한 글지기를 억누르기도 한다. 겉멋질은 겉멋질일 뿐, 글이나 책이 아니다. 겉치레 글쓰기로는 그럴듯하게 꾸밈질이 될 뿐, 눈부시거나 피어나거나 아름다울 글하고는 동떨어진다.

 

적잖은 평론가·시인·작가·기자가 겉멋질 글쓰기를 내세우는데, 이 바람에 휩쓸리는 사람도 적잖다. 이런 글에서는 사랑이 묻어나지 않고, 삶이 흐르지 않으며, 살림하고 동떨어진다. 궂이 얄궂책 이야기를 쓰는 뜻은 이 하나라 할 만하다. 겉치레 이름값이 아닌 우리 사랑을 바라보면 좋겠다. 겉멋이 아닌 우리 살림을 읽으면 좋겠다. 겉껍데기를 글에 담지 말고, 잘나든 못나든 우리 삶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면 좋겠다.


누구나 글을 즐겁게 쓰면 된다. ‘이름올리기(등단)’를 해야 하지 않고, 등단작가 아니면 작가나 예술가로 안 치는 썩어문드러진 이 나라 글판을 갈아엎을 노릇이라고 여긴다.


글쓰는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글님(작가)’이다. 누구나 글님이다. 언제나 글님이다. 아이도 글님, 할매도 글님이다. 이웃 글님 누구나도, 흉내나 따라하기가 아닌 이웃님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고스란히 글빛으로 여미면 좋겠다. 2021.3.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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