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4.1. 말하기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보았기에 말합니다. 보고 알았기에 말합니다. 보고 배우면서 삶으로 녹였으니 말합니다. 보고 나서 곰곰이 생각했으니 말합니다.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얼마나 보았는가를 가늠하면서 말합니다.


  안 보았으면 말을 못 합니다. 보지 않고서 섣불리 말할 까닭이 없습니다. 얼핏 보았으면 얼핏 말할 테고, 깊이 보았으면 깊이 말하겠지요. 참답게 보았으면 참답게 말할 테며, 거짓스레 보았으면 거짓스레 말합니다.


  조선어학회에서 1935∼36년에 펴낸 《한글》을 스무 해 만에 새로 장만하고서 꼼꼼히 읽었습니다. 요즈음 나도는 숱한 인문책에 나오는 일본 한자말이 그대로 흐릅니다. 1935∼36년을 살던 조선어학회 사람들뿐 아니라 여러 글쟁이(소설가)도 비슷한 말씨예요. 예전에는 한자를 까맣게 드러내어 썼다면, 요새는 한글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래요, 무늬만 한글입니다. 오늘날 숱한 글님이며 길잡이(교사)는 다들 무늬만 한글을 씁니다. 알맹이가 아름다이 빛나는 우리말이 아닌, 껍데기만 한글이요 속내는 어느 나라 말인지 알 길이 없는 범벅말을 씁니다.


  범벅말을 쓰기에 잘못일 까닭은 없습니다. 그저 범벅말이 범벅말인 줄조차 모르거나 못 느끼면서 이 범벅말에 생각을 담으려 하니, 생각도 시나브로 범벅이 될 뿐입니다. 이웃나라에서 “새 술은 새 자루에” 담는 까닭이 뭘까요? 우리가 김치를 담그든 곁밥(반찬)을 새로 하든 지저분한 그릇에 담을까요? 밥을 새로 지었는데 설거지를 안 한 지저분한 그릇에 담나요?


  아닐 테지요. 새로 지은 밥은 설거지를 새로 해서 깨끗한 그릇에 담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을 새롭게 지피거나 가꾸어 새롭고 아름다운 나라·고장·마을·집에서 살고 싶다면 어떤 그릇(말)에 어떤 빛(말)을 담아야 할까요?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즐거이 생각하면 모두 즐거워요. 처음부터 어렵다고 여기니 이대로 못박힙니다. 범벅말을 내려놓지 못하기에 새말을 못 씁니다. 설거지를 안 하니 지저분한 그릇을 그냥 씁니다. 설거지를 할 그릇을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가게에 자동차를 부릉부릉 몰고 가서 그릇을 새로 사올 뿐이니 우리 넋이며 얼을 우리 그릇인 우리 말글에 하나도 못 담을 뿐입니다.


  조선어학회 옛어른은 틀림없이 나라살리기(독립운동)에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낡은 범범말을, 바로 일본 한자말을 고스란히 붙잡고서 안 놓았어요. 이 대목도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꾼도 범벅말을 안 내려놓고 새말을 안 배웁니다. 다 틀림없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새말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물려주면서 같이 가꾸려고 하는 일을 안 합니다. 참으로 틀림없습니다.


  이제 차분히 생각해 봐요. 총칼을 앞세운 일본을 물리치겠다고 하면서 우리말을 우리 슬기로 지을 생각은 하나도 안 하는 채 일본 한자말하고 일본 영어를 그냥그냥 써온 지 온해(100년)가 넘습니다. 민낯입니다. 감출 수 없는 우리 참모습입니다. 엉터리인 벼슬꾼을 나무라는 일도 뜻있을 테지만, 이보다는 우리 스스로 얼마나 참사람이요 참어른인가부터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생각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늙은이가 되고, 생각있는 사람은 나이 아닌 철이 들면서 어른이 됩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