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오늘자취 (2021.3.4.)

― 춘천 〈춘천문고〉



  춘천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습니다. 동부시장을 지나 〈명문서점〉을 찾아갔어요. 춘천에서 만난 이웃님은 “차를 벨몽드에 세워 놨어. 거기서 책을 하나 사야 주차비를 안 내.” 하고 말씀합니다. ‘벨몽드’가 어떤 곳인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벨몽드 춘천문고〉입니다.


  볕바른 자리는 찻쉼터로 꾸며 놓은 꽤 널찍한 책집입니다. 〈춘천문고〉에서 판 새책은 사람들 손길을 거쳐 〈명문서점〉으로 깃들 테지요. 새로 나오는 책을 〈춘천문고〉가 가려서 선보이면, 두고두고 되읽힐 책을 〈명문서점〉이 새삼스레 걸러서 건사할 테고요.


  이제 〈경춘서점〉이 닫았으니 춘천에는 〈명문서점〉 한 곳이 헌책집으로 남습니다. 남춘천역 곁에 있는 〈데미안책방〉이 닫는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오늘 마실길에는 그곳을 찾아갈 틈은 없습니다. 〈데미안책방〉 곁에는 〈아직 숨은 헌책방〉이 있다고 들었어요. 남춘천역 둘레에도 새책집·헌책집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라 궁금합니다.


  곰곰이 본다면, 춘천에 책집이 꽤 많다고 할 만한데, 아주 커다란 고장이 아니어도 교육대학교가 있는 고장은 책집이 제법 있고 헌책집도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대학교’만 있을 적에는 책집을 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교육대학교’일 적에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다만 요새는 이 흐름도 한풀 꺾인 듯해요.


  춘천 이웃님하고 이야기를 할 자리로 옮겨야 하니 〈춘천문고〉는 그저 한 바퀴 둘러보고서 나가야 합니다. 한쪽에 만화책을 조금 모아 놓았기에 가만히 봅니다. 이마 이치코 님 《쿄카 요괴비첩》하고 타카하시 루미코 님 《란마 1/2 애장판》이 눈에 띕니다. 《이누야샤 와이드판》이 있다면 집을 텐데 아쉽습니다. 몇 가지 만화책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하나를 쥡니다. 저녁에 길손집에 들면 읽으려고 손바닥책을 하나 고릅니다.


  책값을 셈하려니 “봉투 필요하셔요?” 하고 묻습니다. 앞손님이 책값을 셈할 적에 보니 누런빛 종이자루가 있기에 “하나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마침 쌈지에 100원짜리 쇠돈이 셋 있습니다. “종이자루 둘 더 주셔요.” ‘춘천문고’란 이름을 넣은 종이자루를 건사할 생각으로 굳이 더 삽니다. 오늘 2021년 3월에 이 종이자루는 흔한 100원짜리 꾸러미일 테지만,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뒤에는, 2021년 어느 날 춘천 마을책집 자취를 돌아보는 종이빛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집이 춘천 이웃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오래오래 가기를 빕니다.


ㅅㄴㄹ


《태양의 계절》(이시하라 신타로/고평국 옮김, 범우사, 1978.8.5.첫/2003.12.5.)

《고양이 절의 지온 씨 5》(오지로 마코토/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2019.10.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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