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걷는 골목 (2021.3.5.)

― 춘천 〈서툰책방〉



  삼월 첫머리에 춘천은 눈이 내렸습니다. 이 눈은 다 녹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봄에도 눈이 오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고흥으로 돌아갑니다. 어제 새로 장만한 책을 묵직하게 이고 갈까 하다가, 길손집에서 멀지 않은 후평우체국에서 부칩니다. 이러고서 후평동·효자동·교동을 걸어 〈서툰책방〉까지 갑니다. 열한 해 앞서 이 골목을 거닐 적에 보던 골목집이 꽤 그대로이면서, 사라진 골목하고 집이 제법 있습니다. 마을 안쪽까지 찻집하고 편의점이 들어서기도 합니다.


  인천이나 대구도 그렇고, 부산이나 광주도 그러며, 대전이나 포항도 그러한데, 잿빛집(아파트)이 아닌 골목집이 모인 곳에는 텃밭하고 꽃그릇하고 마당나무가 나란히 있습니다. 춘천도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이제는 오랜 골목길 곳곳을 자동차가 차지해요. 골목에 자동차가 서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다면 어느 고장에서든 아이들이 마음껏 걷고 뛰고 놀면서 복작거릴 만하지 싶습니다. 골목마을 한복판이 아닌 마을 둘레에 차둠터를 따로 마련해서 ‘골목에서는 누구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도록 한다면, 누구보다 마을사람한테 이바지하고 조용하며 살기좋겠지요.


  이웃나라 일본은 차둠터를 마을 한켠이나 둘레에 둔다지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좋도록 자동차는 되도록 마을에 못 들어서도록 한다지요. 춘천쯤 되는 꽃고장(관광도시)이라면 큰돈 들여서 뭘 세우기보다는, 마을사람부터 나그네까지 두루 걷기 좋은 마을살림을 바라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꽃고장이 아닌 수수한 마을도 이렇게 나아가야 포근하겠지요.


  아침볕을 받으며 걸은 끝에 〈서툰책방〉에 닿으나 책집은 아직 안 엽니다. 볼일이 있어 쉴는지 모릅니다. 등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식힙니다. 이곳에 오려고 어제 기찻길에 써 놓은 노래꽃을 그림판에 옮겨적습니다. 고흥으로 가자면 서울을 거쳐야 하는 만큼 기차·전철을 탈 때를 어림합니다. 이때 서툰지기님이 책집에 닿습니다. 살짝이어도 조금 더 머물면서 책내음을 맡을 수 있습니다.


  볕바른 자리하고 조용한 안쪽을 가른 〈서툰책방〉입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책을 갖추었습니다. 해가 그리우면 볕자리로,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으면 안자리에 머물 만합니다. 어제 이곳에 왔으면 잎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자리에 앉겠지만, 여덟 시간 남짓 길을 달려야 하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습니다. 이다음 걸음에는 볕자리에 앉아 골목길을 바라보면서 호젓이 노래꽃을 쓰고 싶습니다. 마을에 내려앉는 햇볕처럼, 마을을 감싸는 바람처럼, 마을을 거니는 발걸음처럼, 조그맣게 퍼지는 기운을 그립니다.


ㅅㄴㄹ


《우린 춘천에 가기로 했다》(백동현, 춘천일기, 2019.11.29.)

《2019 춘천 사람책 : 보통의 우리, 위로의 날들》(정승희·이경하, 서툰책방, 2019.11.)

《작은 것들의 신》(아룬다티 로이/박찬원 옮김, 문학동네, 2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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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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