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2분 (2021.3.2.)

― 인천 〈아벨서점〉



  고작 2분만 책시렁을 돌아볼 틈이 있어도 두 시간 길을 달려가곤 합니다. 아슬아슬 1분이나 5분만 책칸을 살필 겨를이 있어도 하룻밤을 들여 찾아가곤 합니다. 다른 날 느긋이 새롭게 와도 좋아요. 그렇지만 마침 움직이는 길이기에 다른 볼일을 살짝 줄이거나 당기거나 늦추고서 책집이라는 곳에 깃듭니다.


  봄에 꽃망울이며 잎망울을 터뜨리는 나무 곁에 한나절을 나란히 서거나 앉아서 꽃내음하고 잎내음을 맡아도 즐겁습니다. 다문 2분이나 2초라도 봄나무를 쓰다듬고서 푸른내음을 맡아도 기뻐요.


  느긋하게 찾아가야 넉넉하게 누리는 줄 압니다만, 빠듯하게 찾아가더라도 반가이 누리는 길이라고 느껴요. 이다음은 이다음이요, 오늘은 오늘이거든요. 더 많이 읽어도 되지만, 바로 오늘 만나고픈 책을 읽어도 돼요. 가게를 언제 닫는지 어림하면서 〈아벨서점〉을 찾아간 저녁나절입니다. 낮에 인천에 닿아 관교동부터 학익2동까지 걸었고, 자칫 늦겠구나 싶어 버스로 용현동을 가로질렀고, 숭의1동하고 신흥동3가 쪽을 더 거닐고서 택시를 탔습니다.


  지난해인 2020년에는 〈아벨서점〉에서 처음으로 책을 못 샀습니다. 1992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책집에서 책을 샀으나 그만 지난해에는 책을 못 사고 밤골목에서 책집 빛꽃만 남겼습니다. 새해 새봄에 찾아들었어도 막 가게를 닫으려던 때였고, 가벼이 몇 마디 말씀을 여쭙고는 골마루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책집 골마루를 빙 돌 적마다 숲을 빙 돈다고 느낍니다. 이 책집에서는 이 숲을 돌고, 저 책집에서는 저 숲을 돕니다. 좋은 숲도 나쁜 숲도 없이 모두 다르게 푸른 숲입니다. 우람한 숲도 조그만 숲도 없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숲입니다.


  쪽틈이라 할 2분이라면,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기에 넉넉합니다. 쪽겨를이라 할 2분이라면, 책집 골마루를 휘돌면서 책 두어 자락 손에 쥐기에 넉넉합니다. 1000만 원이나 200만 원을 손에 쥐고서 책숲마실을 하지는 않습니다. 2000원이든 1만 원이든 5만 원이든 살림돈을 주머니에 챙겨서 책숲마실을 합니다. 주머니에 넣은 돈을 헤아리면서 어느 책을 집으로 데려갈 만한가를 돌아봐요. 집으로 데려가지 못하더라도 책집에 서서 읽을 책을 만납니다.


  서서 읽어도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장만해서 읽어도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빌려서 읽어도 마음으로 잠깁니다. 산 책을 다시 사서 읽어도 마음으로 피어납니다. 마을에서 샘터인 책집은 우리 몸에 새숨을 불어넣도록 동무가 되어 주는 쉼터입니다. 왜 굳이 아직까지 종이책을 쥐냐고 묻는다면, ‘종이 = 나무 = 숲’이니까요.


ㅅㄴㄹ


《買物繪本》(五味太郞, ブロンズ新社, 2010.4.25.)

《Cool Time Song》(Carole Lexa Schaefer 글·Pierr Morgan, Viking, 2005.)

《천국의 열쇠 上·下》(A.J.크로닌/김정우 옮김, 청한문화사, 1987.1.10.)

《새 삶을 위하여 上·下》(R.슐러/설영환 옮김, 청한문화사, 1987.1.10.)

《잠든 그대》(배창환, 민음사, 1984.12.10.)

《여왕코끼리의 힘》(조명, 민음사, 2008.2.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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