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 손 (2021.2.27.)
― 진주 〈동훈서점〉
우리는 무엇이든 읽습니다. 서로 마음을 읽고 눈빛을 읽어요. 꽃빛을 읽고 풀내음을 읽습니다. 나무가 살아가는 길을 읽고, 뭇나무가 얼크러진 숲을 읽습니다. 하늘을 읽으면서 하루를 헤아리고, 바람을 읽으면서 날씨를 살피고, 별빛을 읽으면서 길을 알아요.
빗소리를 읽고 빗방울을 읽지요. 비가 내리는 소리에 따라 흙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읽고, 빗방울을 살갗으로 맞으면서 철이 흐르는 결을 읽지요. 아침저녁으로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읽으면서 날이 가는 자리를 읽고, 어느덧 돌아오는 제비나 꾀꼬리 같은 철새 노랫소리를 읽으면서 새롭게 피어나는 살림을 읽습니다.
어버이가 짓는 보금자리에서 사랑을 읽고,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에서 꿈을 읽어요. 동무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새롭게 짓고 싶은 앞날을 읽고, 구름이 드리우는 그늘에서 땀을 식히면서 일손을 읽습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은 손길을 읽고, 옷 한 벌을 빨래한 손빛을 읽고, 아기가 보채는 소리에서 무럭무럭 크는 가슴을 읽어요. 나비 날갯짓에서 꽃가루받이를 읽고, 바람 따라 춤추는 나뭇잎을 지켜보면서 푸르게 일렁이는 숨결을 읽습니다.
이 숱한 읽을거리를 두고두고 누린 사람이기에 ‘말’을 눈으로 보도록 꾀한 그림인 ‘글’을 새삼스레 읽을 수 있고, 이 글을 꾸러미로 여미어 오래오래 건사하려는 뜻을 품은 책을 읽을 만합니다.
글이며 책은 온누리 갖가지 읽을거리 가운데 매우 조그맣습니다. 글을 읽더라도 삶이라는 마당을 못 읽는다면, 책을 읽더라도 살림이라는 터전을 안 읽는다면, 책숲이나 책집을 다닌다지만 숲이라는 넋을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겉훑기’로 그치는 걸음새일 테지요.
햇볕을 품은 바람을 마시면서 진주 골목을 거닐다가 〈동훈서점〉으로 왔습니다. 진주가 진주답게 나아가는 길이라면 이 고장 사람들이 오순도순 노래하는 구성진 살림판을 헤아리는 마음자리에 있지 싶어요. 글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책을 돈으로 쓸 수 없습니다. 사랑을 돈으로 못 사고, 살림을 돈으로 맡기지 못해요. 모두 우리 손으로 스스로 지어요. 언제나 우리 손으로 여기에서 가꾸어요.
이 손을 바라보는 배움터라면, 이 손빛을 아끼는 마을이라면, 이 손길을 글로 옮기는 이웃이라면, 이 손자국을 보듬는 동무라면, 진주 남강에서 수달하고도 함께살면서, 해오라기에 두루미가 내려앉아 쉬었다 가는 냇가로 보살피리라 생각해요. 관광상품은 없어도 좋아요. 마을이 있고, 책집이 있고, 사람 곁에 숲이 있으면 돼요.
《내일을 향해 달려라》(레슬리 슈라이브너/조웅준 옮김, 동광출판사, 1985.1.25.)
《야외로 나가자 1∼5》(하야세 준/김균희 옮김, 시공사, 1998.)
《벽》(청소년정신문화지도회 엮음, 여울, 1983.6.25.)
《수탈된 대지, 라틴아메리카 5백년사》(E.갈레아노/박황순 옮김, 범우사, 1988.10.2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