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야 고마워 (2021.2.6.)

― 목포 〈동네산책〉



  아버지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광주를 거쳐 목포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은 열한 살 작은아이는 “아버지, 도시는 뛰기 어렵네요? 차가 너무 많네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사람도 집도 부릉이도 많은 곳이 큰고장이거든.” 날마다 이마에 땀을 흩날리면서 뛰놀기를 즐기는 작은아이로서는 부릉이 눈치를 보느라 멈칫거릴 뿐 아니라 시끄러운 큰고장이 좀 못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모저모 볼거리가 많다고 여깁니다.


  길손집에서 일찌감치 나섭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마을쉼터에서 다리를 쉬고 김밥을 먹입니다. 다시 걷습니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언덕받이 마을책집 〈동네산책〉에 이릅니다. “잘 걸었구나. 애썼어.” 작은아이는 어느새 일그러진 얼굴입니다. “어, 아버지가 책집만 다녀서 그래? 아버지가 잘못했어. 아버지가 안아 줄게.” 작은아이를 토닥이고 노래를 부르면서 목포 골목길을 걷습니다. 가게를 찾아봅니다. 마침 부릉이가 없는 골목입니다. “저 가게까지 누가 먼저 달리려나?” 짧지만 함께 달립니다. 얼음고물을 둘 고릅니다. “자, 이제는 천천히 걸으면서 먹자.”


  이다음에는 책집으로 걸어오기 앞서 얼음고물을 먼저 먹자고 다짐합니다. 아니, 책집으로 오기 앞서 마음껏 밟고 달릴 풀밭이며 올라탈 큰나무를 찾아야겠어요. 〈동네산책〉 지기님이 작은아이한테 글꾸러미를 펼쳐 보이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글이나 그림을 남겨. 너도 뭔가 그려 주겠니?” 하고 묻습니다. 작은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참 그림그리기에 빠져듭니다. 비로소 웃는 낯입니다. 고맙구나 아이야.


  저는 어릴 적에 늘 걸어서 여기부터 저기를 오갔는데, 그냥 걷기만 하지 않았어요. 으레 뛰거나 달렸습니다. 딱히 무슨 일이 있거나 바쁘기에 달리지 않아요.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즐겁습니다. 동무랑 겨루기를 하지 않더라도 혼자 씽씽 달리지요. 얼마나 빠른가 하고 재지 않습니다. 달리면서 ‘나는 바람이야, 나는 바람이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마을(동네)을 거닌다(산책)’는 이름인 책집으로는 누구나 걸어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 앞까지 부릉부릉 모는 분도 있을 테지만, 책을 살피자면 골마루를 거닐어야 합니다. 손에 책을 쥐고서 이야기로 스며들자면 부드럽게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길 노릇입니다. 가만히 걷기에 둘레를 알아봅니다. 찬찬히 거닐기에 하늘을 느낍니다. 조용히 걷는 사이에 바람맛을 봅니다. 느긋이 거닌다면 겨울내음이며 봄기운을 물씬 느낍니다. 거닐면, 뛰놀면, 노래하면 찌푸린 구름이 걷힙니다.


ㅅㄴㄹ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호원숙, 세미콜론, 2021.1.22.)

《작은 기쁨 채집 생활》(김혜원, 인디고, 2020.6.1.)

《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2014.8.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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