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 플로라 - 꽃 사이를 거닐다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정수윤 옮김 / 늦여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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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1.2.1.

숲책 읽기 167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

 시부사와 다쓰히코

 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7.15.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시부사와 다쓰히코/정수윤 옮김, 늦여름, 2019)는 몇 가지 얼개로 꽃 사이를 거닌 자취를 들려줍니다. 옛그림하고 옛이야기에 글님 나름대로 마주한 꽃내음을 엮습니다. 한 해 가운데 길어야 이레쯤 마주할 만한 꽃이기에, 예부터 이 꽃을 그림으로도 담고 노래로도 불렀어요. 요새는 빛그림으로도 담습니다. 숱한 사람이 꽃을 곁에 두며 살림을 짓는 사이에 차근차근 익힌 길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고, 때로는 글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꽃은 한 송이조차 없습니다. 이름은 같더라도 모두 다른 꽃이에요.


  이름은 ‘사람’이어도 모두 다릅니다. 배움터에서 모두 똑같은 차림새로 맞추더라도, 일터에서 다 같은 차림으로 일하도록 하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콩나물 배움칸에 빼곡히 들어차야 하던 예전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숨결이에요. 꽃찔레(장미)를 한 다발 묶더라도 다 다른 꽃찔레입니다.


  꽃 사이를 거닐겠다면, 남이 갈무리한 글을 읽거나 살피되, 언제나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코로 맡고, 우리 손으로 쓰다듬고, 우리 머리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풀꽃지기가 오래도록 살펴보고서 갈무리한 글에 남은 꽃 한 송이랑,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바라보는 꽃 한 송이는 다른 숨결이거든요. 전라도 경상도 서울에서 보는 꽃 한 송이는 결이 다릅니다. 때에 따라서도 다르고, 고장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눈을 감고서 풀밭에 가만히 앉아 들풀을 찬찬히 쓰다듬어 보면, 다 다른 들풀마다 다 다른 숨결이 우리 손으로 스치는 줄 느낄 만합니다. 눈을 감은 채 나무 곁에 서서 나무꽃한테 다가가 냄새를 맡으면 가지마다 맺힌 꽃송이에서 조금씩 다르게 냄새가 흐르는 줄 느낄 만합니다.


  꽃이란 너이면서 나입니다. 꽃빛이란 우리 빛이면서 모든 빛입니다. 마음으로 만나려 하면 스스로 읽어내는 길을 찾습니다. 마음이 아닌 다른 이들이 살펴보고서 갈무리한 책이나 글을 찾으려 한다면 판에 박힌 이야기만 되풀이하겠지요. 《플로라 플로라, 꽃 사이를 거닐다》를 쓴 글님은 능금나무에서 떨어져 흙바닥을 뒹구는 능금을 처음으로 주워서 깨물어 보고서 대단히 놀랐다고 합니다. 과일가게에서만 보던 능금이 아닌, 또 과일밭지기가 딴 능금이 아닌, 그저 다 익어서 떨어진 능금을 손수 주워서 ‘오직 하나뿐인 이 능금’을 마주하여 맛본 삶이란 글님한테만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ㅅㄴㄹ


(시든 수선화를) 한번 잘랐더니 한동안 그 가지에 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그 후론 잘라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14쪽)


일본에선 제비꽃을 어떻게 다뤘나 살펴보니, 고대시대 이래 원예식물로 재배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37쪽)


옛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 어째서 이렇게 섬세하고 가련한 꽃을 보고 모시실 감긴 실꾸리를 연상했을까. (104쪽)


마리화나 때문에 대마를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게 된 것처럼 양귀비도 아편 때문에 악동 취급을 받게 됐다. 원래 고대 일본에서 대마는 유서 깊은 식물이었다. (169쪽)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토록 일본에서 사랑받고 상륙하자마자 전국에 퍼진 코스모스가 유럽에서는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85쪽)


길가에 떨어진 사과도 있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사과를 주워 껍질째 베어 먹어 보았다. 입안 가득 신맛이 퍼지는데 무척 맛이 좋았다. 길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먹은 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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