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말꽃 짓는 책숲 2021.1.29. 사회적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치고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던 1994년 어귀에 ‘중·고등학교’하고 ‘대학교’란 이름을 비로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즈음 대학교란 곳에서 만난 윗내기는 “대학교란 열린배움터이지.” 하고 곧잘 말했습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라 했어요. 한자로 ‘대(大)’를 쓴 뜻은 ‘큰배움터’가 아닌 ‘열린배움터’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얘기를 스물 몇 해쯤 잊고 살다가 지난 2020년에 비로소 다시 떠올렸어요. 1994년 그즈음에는 허울만 ‘대학교·큰배움터·열림배움터’일 뿐, 마침종이로 금을 그으며, 배움터 사이에도 위아래를 가르고, 배움턱에 닿지 못한 수수한 사람 사이에도 금긋기를 일삼는 곳이 바로 ‘대학교’라고 느껴, 이런 곳은 ‘열린-’이든 ‘큰-’이란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쉽다는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이 그 열린배움터를 석 달 만에 그만두기로 했고, 푸른배움터를 마친 몸(고졸 학력)으로 즐겁게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오랜만에 옛자취를 떠올리며 ‘열린’이란 말씨를 헤아리다가 ‘사회·사회적’이란 일본 말씨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새로 찾았습니다. 1998년 언저리에는 ‘삶터’쯤으로 이 일본말을 풀어낼 만하다고 생각했고, 2002년 언저리에는 ‘살림’으로도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007년쯤에는 ‘마을’하고 ‘터’로도, 2010년쯤에는 ‘곳·데·자리·마당’으로도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뜻 보기로는 ‘사회·사회적’ 하나만 쓰면 다 될 일 아니냐고 할 텐데, 말을 쓰는 결이나 삶을 헤아린다면 사뭇 달라요. 우리는 한 낱말로만 여러 자리를 나타내지 못하거나 않아요. 우리는 여러 낱말로 여러 자리를 새롭게 나타내거나 그립니다. 그러니 꾸준하게 바깥말을 새로 들이지 않겠어요?
이웃나라 일본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일본은 노벨문학상뿐 아니라 여러 ‘노벨 보람’을 두루 받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질그릇을 빚는 사람은 늘 찬밥꾸러기였으나, 일본으로 끌려간 질그릇님(도예가)은 크게 사랑받았어요. 요즈막에 한창 샅샅이 읽으며 맞아들인 ‘진창현’이란 분도, 이 나라에서는 꽃피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찬밥이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고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생각하는 날개를 나라지기하고 벼슬아치가 싹뚝 꺾었고, 사람들 스스로도 살아남으려고 제 날개를 손수 꺾었습니다.
날개가 꺾이거나 날개를 꺾는다고 할 적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수수한 살림자리나 마을이나 숲에서 말꽃을 피우는 길을 틀어막는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사회·사회적’이란 새말을 지었습니다. 이미 있는 몇 가지 한자를 엮었어요. 우리는 뭘 하느냐 하면, 일본사람이 생각을 밝혀서 지은 일본 한자말을 그냥 베끼거나 훔치거나 따라서 써요. 생각을 안 합니다. 생각날개를 안 폅니다.
일본말 ‘사회·사회적’을 쓴대서 잘못도 아니요 말썽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생각날개를 안 펼 뿐이요, 생각날개를 안 펴는 자리에서는 생각도 삶도 사랑도 마을도 꿈도 책도 이야기도 글도 새롭게 싹트거나 피어나기 어렵습니다. 글로 돈을 벌고 이름을 얻은 숱한 사내가 저지른 응큼질이며 꼴값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글로 돈을 벌고 이름을 얻는 숱한 가시내는 무엇을 할까요? ‘정의연’이며 ‘여성단체’이며 ‘여성 국회의원’은 얼마나 슬기롭거나 아름다울까요? ‘돈·이름·힘’ 곁에 서면 사내도 가시내도 모두 바보가 되어 날개꺾이를 일삼는 우리나라이지 않나요?
아무리 ‘민주·진보·평화·노동·인권·경제·혁명·평등·권리·여성운동(페미니즘)’ 같은 이름을 외치더라도 이런 숱한 말씨가 하나같이 일본 먹물붙이가 생각날개를 펴서 스스로 지은 말씨였으며, 우리는 이 일본말을 깊거나 넓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베끼거나 훔치거나 따라온 줄을 낱낱이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이름으로는 ‘진보’라지만, 서울에서 10억을 웃도는 잿빛집이랑 자가용 두엇을 거느리면서 아이들을 나라밖 배움길로 보내고 이래저래 ‘하늘(SKY) 대학교’에 슬그머니 밀어넣는다면,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입니다. ‘사회·사회적’은 모두 겉치레입니다. 낡은 ‘사회·사회적’을 모두 허물고, 새터 새누리 새밭 새길 새물결 새집을 숲바람으로 가꿀 적에 스스로 깨어나는 빛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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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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