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7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사람 곁에서 이웃이요 동무



《토리빵 7》

 토리노 난코

 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2.25.



  《토리빵 7》(토리노 난코/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을 되읽고 다시 읽다가 생각합니다. 한때나마 이 그림꽃책이 우리말로 나왔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는 일본책을 장만할 때로구나 하고. 우리말로는 일곱걸음에서 멈추었으나, 일본에서는 2020년까지 스물일곱걸음이 나왔습니다. 《토리빵》을 그린 분은 어머니하고 둘이 살면서 새랑 이웃하고 동무하는 나날을 누리면서 그림꽃을 빚어요. 때때로 노래(시)를 쓰는데, 새랑 풀꽃나무랑 숲이랑 바람이랑 하늘이랑 냇물이 어우러지는 하루를 누리다가 문득 흘러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림꽃님은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드문 새를 그리거나 지켜보지는 않습니다. 곁에서 마주하는 새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반깁니다. 이 새도 좋고 저 새도 좋아요. 철새도 좋고 텃새도 좋습니다. 어느덧 텃새처럼 구는 철새도 좋고, 새가 내려앉는 나무도 좋으며, 온누리를 소복히 덮는 눈도 좋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니 좋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 좋다지요. 어느 때는 어머니 몰래 집에서 사마귀를 키워서 사마귀알을 집 한켠에 건사하기도 했답니다.


  늘 마주하고 좋아할 뿐 아니라, 오롯이 사랑하는구나 싶은 보드라운 눈빛으로 이웃하고 동무하는 새이기에, 《토리빵》에 나오는 숱한 새는 사람하고 똑같이 살가운 숨결로 나옵니다. 아무렴, 새라고 하는 숨결은 늘 사람 곁에서 지내요. 하늘하고 땅 사이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날갯짓을 하는 이 새란, 바람을 읽고 들을 알며 풀꽃을 노래하는 삶을 사람한테 들려준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새하고 풀벌레하고 바람한테서 비롯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짓는 모든 가락은 새랑 풀벌레랑 바람이 처음 짓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개구리가 찾아들고, 매미도 날아옵니다. 벌나비도 살며시 끼고, 고래에 지렁이까지 어우러지는 노래판이 되어요.


  그저 곁에 있으면 됩니다. 한마을을 이루는 사이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바다를 가르며 노니는 뭇숨결이 ‘고기’이기만 하지 않듯, 하늘을 나는 새는 사람한테 고기밥(이를테면 닭고기나 오리고기나 메추리알)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새가 제 삶터를 잃으면, 사람이 사는 터전이 나란히 망가지지 싶습니다. 새가 짓는 집인 ‘보금자리·둥지’라는 낱말은, 사람이 아늑하게 가꾸어 누리어 아이를 낳아 돌보는 곳을 빗대는 이름입니다. 새를 새답게 아낄 줄 아는 손길을 지핀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아끼리라 생각해요. 새를 한낱 고기먹이나 구경거리로 본다면, 사람은 사람다운 빛을 바로 잃어버린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푸근한 밤공기 냄새를 맡고 싶어서 5월에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잔다.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게 좋았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반경 8km 이내에는 선로가 없고, 낮에는 열차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5월의 밤만이 그렇게 조용한 것일까. (3쪽)


무궁화에 부용. 그리고 접시꽃. 희미하고 서늘한 새벽의 냄새가 나는 여름날 아침의 꽃을 보자. (12쪽)


하지만 이 잎을 먹은 벌레는 아마도 이미 이 세상엔 없겠지. 한입에 꿀꺽 삼키는 녀석도 통째로 갉아먹는 녀석도, 알고 있기에 서두르는 거다. 열매 맺는 계절이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32쪽)


이윽고 잎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면, 투명한 열매가 살짝 얼어붙는다. 아침 햇살 비치는 말라붙은 들판에 반짝반짝, 보는 이도 없이 그저 붉게 빛난다. (56쪽)


11월의 따뜻하고 바람 세게 불던 날, 마지막 낙엽이 지고, 대기는 건조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평온한 죽음의 향기. (72쪽)


그렇다곤 해도, 뱀은 아마 도로를 이해하고 있을 거다. 이것은 일종의 흐름이다. 좋아서 강물에 떠내려가는 뱀이나, 바람을 거스르는 새가 없는 것처럼, 그들에겐 그들만의 지도가 있다.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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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りぱん #とりの なん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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