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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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5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08.4.18.



  여태까지 살며 가장 오래 앓은 적은 언제인가 하고 떠올리니 지난 한 달이지 싶다가, ‘아니야, 코고름(축농증)으로 마흔 해를 앓았잖아’ 하는 말이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시골살림을 지으면서 코고름을 거의 잊고 삽니다. 큰고장에 그대로 머물며 그곳 일터에서 시키는 일을 꼬박꼬박 하고 품삯을 받아 집삯을 내는 살림이었다면 아마 코고름을 떨치는 길을 스스로 못 찾았으리라 느낍니다. 문득 돌아보면, 코고름을 씻던 그즈음, 도깨비(귀신)를 맨눈으로 보아온 마흔 해를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둘이 나란히 제 둘레에서 빙빙 돌며 마음으로 억누르고 몸으로 짓누르던 지난날입니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 몸앓이는 없습니다. 다 다르게 아프지만 다 똑같이 지겨우면서 고맙습니다. 지쳐 쓰러지거나 나가떨어지는 동안에 마음하고 몸을 새롭게 새기거든요. 앓아누우며, 숨이 막혀 어쩔 길을 모르며, 밤새 잠들지 못하며, 뜻밖에 아주 고요히 빛길을 따라 생각을 가누곤 합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펴면 노래님 나름대로 뒤척이는 나날이 흐릅니다. 알쏭달쏭한 말 사이 불거지는 “늙은 창녀”에서 우뚝 멈춥니다. 노래님은 삶에서 “늙은 창녀”를 어떻게 마주했을까요. “잠자리에서 살을 섞다 떨군 거웃”은 사랑 아닌 살섞기일 테지요.



잿빛 담벽에 줄줄이 드리워졌다 밤이 오면 / 고대 종교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곧 사라졌다 / 사랑을 나눈 침대 위에 몇 가닥 체모들 /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사물들 간혹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18쪽)


그저 막막한 하늘이라 치고 어여 잠이나 자거라 나는 아직도 슬픔에 남몰래 집착하여 자목련 고양이 명멸 등의 낱말들이 내 유아독존의 길을 늙은 창녀처럼 막아서네 그것 말고는 위풍당당 숭그리당당 유쾌하게 길을 걷지만 가끔 (그녀와의 마지막 테니스/140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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