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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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60


《김훈 世說》

 김훈

 생각의나무

 2002.3.8.



  《김훈 世說》(김훈, 생각의나무, 2002)은 글님이 한겨레신문에 글을 싣는 ‘여느 글일꾼(기자)’으로 일하던 무렵 쓴 글을 묶습니다. 저는 스무 살이란 나이부터 여러 해를 한겨레신문을 나르는 일꾼으로 지냈습니다만, ‘기자가 아닌 신문배달원’한테 ‘왜 한겨레신문이 자꾸 이 따위로 뒷걸음이냐’고 따지는 읽새(독자)들 짜증을 더는 받기 싫기도 하고, 저 스스로 이 새뜸이 담는 글이 영 못마땅해서 일찌감치 끊었습니다. 그래서 김훈 님이 한겨레에 실은 글을 본 적은 없습니다.


  얼추 스무 해가 흐르고 나서야, 또 ‘생각의나무’가 ‘베스트셀러 사재기’를 비롯해 ‘덤핑책 팔기’로 책마을을 잔뜩 흐리고서 어느새 사라진 지 한참이 된 이즈음에야, 그 ‘생각의나무’에서 책을 참 많이 내놓은 김훈 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다른 출판사로 옮겨서 낸 책하고 견준다면, 비록 예전 출판사가 사재기랑 싸게팔기로 물을 잔뜩 흐리기는 했어도, 지난날 글결이 한결 힘이 있구나 싶습니다. 다만 이 글결에서 스스로 거듭나려는 길을 얼마나 걸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는 살림은 썩 드러나지 않거든요. ‘사회를 읽는 눈’이 깊거나 매섭더라도 ‘살림을 하는 손’이 없다면, 모든 글은 허울로 그친다고 느껴요.


  살림하는 손으로 쓰는 글이 아닐 적에는 자꾸 멋을 부리거나 겉치레를 하려고 든다고 느낍니다. 왜 글을 쓰는 숱한 분들은 삶이며 살림하고 등지려 할까요? 왜 살림하는 그 투박하게 빛나는 손으로 투박하게 글을 쓸 엄두를 안 낼까요?


  글쟁이 김훈 님은 ‘허울이 아닌 속알’을 담아내도록 ‘맨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한겨레신문 젊은 글일꾼한테 보여주었다고 느낍니다만, 여기까지였어요. 이다음은 좀처럼 안 보입니다. 아기를 돌보고, 씨앗을 품고, 구름하고 별빛하고 풀꽃나무를 곁에 두도록 살림자리를 가꾸어 본다면, 그때에는 글쟁이 아닌 살림벗이란 이름으로 김훈이란 사람을 다시 만나겠거니 생각해 봅니다. 부디 붓을 좀 내려놓아 보시기를.


ㅅㄴㄹ


너는 재미도 없고 신명이 날 리도 없는 국어·영어·수학에 주눅들려 노예만도 못한 고등학교 시절과 재수 시절을 거쳐서 겨우 대학에 들어갔다. (15쪽)


그 후 빈익빈 부익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고 재벌의 몸집은 오히려 비대해졌다. 고통은 전담되었다. 정부는 이제 고통분담을 말하지 않고 자유시장이 고통과 행복을 분담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5쪽)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는 협박은 이른바 국민을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존중하는 척하면서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바벨탑을 쌓던 시절처럼 언어는 무너져내리고 있다. 언어가 무너지면 그 사회의 모든 구조물들이 무너져내린다. (74쪽)


동강댐 건설에 관해서 대통령의 입장은 중립적이라지만, 대통령의 부하들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밀어붙여 왔다. (114∼115쪽)


빠른 속도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과정을 챙기지 않는다. 속도의 꿈은 길을 버리고, 오직 시간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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