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같이 나아가는 (2020.2.13.)

― 서울 〈이후북스〉



  책은 홀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빛꽃을 지은 이가 있어더라도 홀로 엮지 못합니다. 글님·그림님·빛꽃님이 손수 나무를 베어서 종이로 갈무리한다면, 또 종이에 글이나 그림이나 빛꽃을 얹을 물감(잉크)까지 손수 갈무리한다면, 또 종이꾸러미를 여미는 실이나 풀을 손수 갈무리한다면, 이때에는 ‘글님 혼자서 책을 짓는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책은 ‘지은이’ 곁에 ‘펴낸이’가 있고, 둘 사이에 ‘엮는이’가 있어요. 이 셋 곁에는 ‘박은이·찍은이·묶는이’가 있고, 다 박고 찍고 묶은 책을 건사하는 일꾼에다가, 이 책을 책집으로 나르는 일꾼이 있고, 책집에서는 책집지기가 책손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 노릇을 합니다. 종이를 갈무리하고 물감을 갈무리하는 일꾼도 있으니, 지은이가 읽는이를 만나기까지 그야말로 숱한 사람을 거칩니다.


  책이 태어나면 으레 ‘지은이’만 눈여겨보기 마련이지만, 책을 손에 쥐어 읽으면서 이 모든 길을 함께 훑을 수 있을까요? 펴낸이나 엮는이를 비롯해, 종이를 짓고 종이로 묶고 책집에서 나누는 숱한 사람들 이름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나요?


  혼자서 책을 펴내는 길을 가는 분이 〈이후북스〉에서 이야기꽃을 폅니다. 이 이야기꽃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먼마실을 합니다.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놓고서 책수다를 펴는 자리입니다. 혼펴낸이(1인출판) 곁에 꾸밈님(디자이너)이 앉고, 지은이(글 쓰는 사람)도 나란히 앉습니다. 이제 글쓰기, 꾸미고 엮기, 펴내기, 알리기까지 혼자 해내는 분이 느는데요, 혼자 하기에 스스로 대견하면서 즐거우면 좋겠어요. 곁에서 일을 나누는 벗이 있다면 어깨동무하는 보람을 나누면 좋겠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이웃나라에서 펴내는 책은 예부터 한두 쪽이나 여러 쪽을 들여 ‘책이 나오도록 이바지한 사람’을 줄줄이 들곤 합니다. 스물네 살 무렵까지는 굳이 이렇게 숱한 이름을 적으면서 종이를 더 써야 하나 아리송했어요. 종이를 아껴 한 줄이라도 더 이야기를 담을 만할 텐데 싶었지요. 스물네 살에 펴냄터(출판사)에 처음 들어가서 일하는데 제 이름이 책자취에 들어가더군요. 왜 들어가나 했더니 ‘지은이·엮은이’뿐 아니라, 이 책을 알리고 팔며 책집에 넣고 펴냄터 살림을 건사하는 사람도 ‘함께 책을 짓는 사람’이라고 알려주더군요.


  이때에 비로소 ‘함께하는 사람 이름’을 한 줄로라도 더 넣는 뜻, 굳이 몇 쪽을 들여 고맙다고 밝히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한 쪽 줄여도 ‘이름넣기’를 제대로 해야 아름책이 되네 하고 깨달았어요. 그래요, 고마운 이름을 불러야지요.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하는 이웃을 바라볼 적에 비로소 책빛이 반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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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B 전문가》(이방황 글·사진, 2019)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이정하 글·슬리퍼 사진, 스토리닷,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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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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