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O 마오 1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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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니?



《마오 1》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11.25.



  《마오 1》(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를 손에 쥐는데 불쑥 《블랙 잭》이 떠오릅니다. 아니 이분,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테즈카 오사무 님을 기리는 그림꽃책을 선보이시나 싶어요. 《마오》에 나오는 아이 머리빛이며 얼굴 흉터는 바로 ‘블랙 잭’ 판박이일 뿐 아니라, 이 아이가 하는 일은 ‘다치거나 아픈 이를 돌보는 길’입니다.


  그림꽃을 펴는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줄거리를 꼬거나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습니다. 늘 대놓고 그립니다. 처음부터 모든 실마리랑 수수께끼랑 밑감이랑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요. 다만 이렇게 몽땅 드러내되 이 여러 가지를 엮어서 짓는 이야기꽃은 남다르고 새롭습니다. 그렇기에 꽤 길게 이야기를 꾸려도 지치는 빛이 없을 뿐더러, 따분하거나 늘어지는 빛이 없어요. 노상 싱그러이 그려내지요.


  이 그림꽃책에 나오는 ‘마오’란 아이는 구백 해쯤 살아왔다고 합니다. 죽음을 잊은 몸이 되어 살아가는 셈인데, ‘죽음을 잊은 몸이 된 실마리’를 풀려고 하다가 2020년 언저리를 살아가는 아이하고 만난다지요. 오늘하고 어제를 가로지른 아이는 어린 날 어떤 일에 휩쓸려 두 어버이가 그곳에서 바로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그때 일이 머리에 제대로 안 남았다고 해요. 아마 이 아이는 어릴 적 어떤 일을 겪으며 몸이 확 달라졌지 싶어요. 이 아이가 백 해를 거슬러서 1900년대 첫자락을 살아가는 ‘마오’를 만나는 일도, 또 마오가 구백 해 앞서 겪은 일도, 뭔가 수수께끼가 있으며, 바로 이 수수께끼를 두 아이가 함께 풀어나가는 줄거리를 다루는 《마오》입니다.


  한창 읽다가 문득 책을 덮고서 생각합니다. 웬만한 그림꽃책은 ‘어린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이끌어요. 때로는 ‘나이든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앳된 사람들이 새롭게 부딪히고 마주하고 갈무리하고 추스르고 바꾸고 짓는 길을 다룹니다.


  곰곰이 본다면 모든 아름다운 그림꽃책은 ‘어린이·푸름이가 스스로 마음으로 깨닫고 사랑하면서 새롭게 짓는 우리 삶터’를 줄거리로 삼는구나 싶습니다. 숱한 어른은 틀을 세워 이 틀에 어린이·푸름이를 가두려 합니다. 이 나라 배움수렁(입시지옥)이 그래요. 배움수렁을 지나간 뒤에 맞닥뜨릴 숱한 수렁도 매한가지입니다.


  돌림앓이가 퍼진 지 한 해가 지나가는 2020년 12월인데, 이 한 해 동안 ‘어른’이 한 일이란, ‘돌림앓이에 걸린 사람이 몇인가 세서 날마다 알리며,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걱정하도록 부추기기(확진자 수 발표 +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돌림앓이에 걸려서 숨진 분도 있습니다만, 거의 모두는 말끔히 털고 일어납니다. 새로운 돌림앓이가 아니어도 고뿔에 걸려서 숨지는 분이 있고, 고뿔을 깨끗이 씻어내고서 한결 튼튼하게 서곤 합니다.


  어른다운 어른, 곧 철이 든 사람이자 어진 사람이며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오늘날 터전에서 ‘돌림앓이에 걸려도 말끔히 낫는 길’을 들려주고, ‘돌림앓이에 걸릴까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할 일을 잊지 않도록,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꿈을 사랑으로 그려서 즐겁게 일하고 포근히 쉬는 길’을 이야기할 노릇이에요.


  그러니까 요즈막에는 ‘철이 든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인 ‘어른’다운 어른이 드물어요. 앓는 이를 돕고, 앓고 난 이웃을 보듬고, 언제나 마을이 숲으로 가득한 푸른 보금자리가 되도록 땀흘리고 마음을 기울일 사람이어야 참어른이지 싶은데, 참어른은 어디 있나요? 《마오》에 나오는 아이들은, 구백 살이나 산 사람을 ‘아이’로 묶기는 멋쩍습니다만, 아무튼 이 아이들은 바꾸려고 합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틀을, 쳇바퀴가 쳇바퀴인 줄 모르고 휩쓸리는 어른 터전을, 우리가 손수 지어 가꾸는 사랑터로 바꾸고자 마음눈을 뜨고 손을 잡습니다.


ㅅㄴㄹ


“너는 왜 싸우지 않았지?” “뭐? 내가. 왜요?” “아무리 봐도 네가 격상이었는데. 그 증거로 네 피가 묻으니, 그놈은 바로 도망치려 했잖아.” (30쪽)


“날았었지? 내가. 어제부터 이상한 일만 자꾸 일어나.” (46쪽)


“그래도 어제 돌아갔을 때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 왜 내 시대와 다이쇼 시대가 이어졌을가. 다만, 여기에는 뭔가 단서가 있을 거야.” (93쪽)


“왜, 키바 너는 강하잖아.” “강하다니. 내가? 아닌데. 몸도 약하고 운동도 못하고.” “그러니까, 사고도 있었고 힘든 일이 많았잖아. 그런데도, 전혀 그런 낌새 없이 언제나 밝다고 할까. 정신적으로 아주 강하다고 할까.” ‘음, 칭찬하는 거 맞지?’ (159쪽)


“흐음, 요괴를 모두 퇴치만 하는 건 아니구나.” “요괴 중에서도 얌전한 자가 있고, 사람을 잡아먹는 흉포한 자가 있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죠. 그리고 마오 님은 원래 부수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 장기였던 모양이고.” (163쪽)


“나이가 몇 살이야?” “도중에 헤아리는 걸 그만뒀는데, 900년 정도는 된 것 같군.” “900년?” (176∼1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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