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네 동무는 어디에 사는가 (2020.10.30.)
― 전주 〈잘 익은 언어들〉
이제 흙사람이 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님이 1987년에 선보인 〈Where Is The Friend's Home?〉이란 빛그림이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이 빛그림을 같이 볼 적에 “네 동무는 어디에 사는가?”로 옮겨서 이야기합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마다 이 빛그림 이름을 떠올려요. 전남 고흥에는 곁배움책(참고서)하고 몇 가지 달책을 들이는 곳은 있되, 마을살림을 북돋우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집은 없어, 늘 멀리 마실을 갑니다. 책으로 삶을 만나는 동무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돌아보는 셈입니다.
곰곰이 본다면 고흥 같은 시골에서 ‘곁배움책 장사’를 하는 분들이 마을책집으로 돌릴 만하지만 엄두를 안 내지 싶습니다. 고흥군 책숲이나 배움터에 책을 대며 살림을 잇는달까요. 가면 갈수록 열린배움터는 부질없는 판이 될 텐데, 온나라는 배움길 아닌 수렁길에서 헤맵니다. 물음종이(시험지)를 풀면 쓰레기가 될 곁배움책을 열아홉 살까지 붙들면서 마을도 나라도 푸른별도 보금자리도 못 돌아보게 가로막는 셈이지 싶습니다.
나라가 조용할 적에는 가만히 숲길을 거닐거나 풀꽃나무 곁에 서서 푸른노래를 들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시끄럽고 어수선할 적에는 이웃하고 동무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익은 언어들〉에서 마련한 이야기꽃에 함께하려고 전주마실을 했고, 미리 하루를 묵으면서 아침부터 전주 여러 곳을 거닐었습니다. 전주도 작지 않은 고장이라 잿빛집이 꽤 많고 높습니다만, 조금만 걸어서 냇가에 서거나 골목에 깃들면, 어느새 살랑살랑 가을빛에 물든 포근한 노래가 흘러요.
우리가 붙잡는 길은 무엇일까요. 우리 이웃은 어디에 살까요.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우리 동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요. 자꾸 물어보면서 걸어야지 싶어요. 씽씽이를 내려놓고서 조용히 들바람을, 골목바람을, 마을바람을, 숲바람을, 바닷바람을, 멧바람을 쐬어야지 싶어요. 손따릉을 꺼놓고 목소리를 돋워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지펴야지 싶어요.
사랑 앞에는 두려운 길이 없습니다. 사랑 곁에는 무서운 길이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시샘·따돌림·괴롭힘이란 외곬에 접어들면 끼리끼리 차지한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두렵거나 무서워하기 마련입니다. 마을이란, 맑게 숨쉬는 마음이 만나서 말꽃을 피우는 터전이지 싶습니다. 마을책집이란, 맑게 노래하는 마음으로 책을 징검다리 삼아 말꽃잔치를 펴는 조촐한 마당이지 싶습니다.
동무는 숲에 있습니다. 푸른숲에도, 책숲에도, 마을숲에도, 노래숲에도, 이야기숲에도, 그림숲에도, 놀이숲에도, 살림숲에도, 다 다른 동무가 환하게 웃음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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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김탁환, 해냄, 2020.8.28.)
《가만히 들어주었어》(코리 도어펠드/신혜은 옮김, 북뱅크, 20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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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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