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도서관
사전 짓는 책숲 2020.10.30. 서울책 숲책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전북 전주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해서 마실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돌림앓이랑 나란히 거의 모든 이야기꽃은 닫아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돌림앓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나서고 알아차리면서 우리 삶을 저마다 즐겁고 다르게 가꿀 노릇인데, 이야기꽃이 없어도 스스로 짓고 해내면 넉넉한데, 오늘날 삶터를 보면 ‘스스로 하기’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남한테 맡기기’로 흐릅니다. 옷짓기랑 집짓기를 손수 하는 사람은 0.001퍼센트라도 될까요? 그나마 밥짓기는 제법 스스로 한다지만 ‘전기밥솥’한테 내맡기는 사람이 훨씬 많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밥옷집’ 세 가지 살림을 스스로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 숲책(환경책)이 꽤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숲책을 쓰는 사람치고 숲에서 살거나 서울 아닌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나같이 서울이나 서울 비슷하게 커다란 고장(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인천이나 대전이나 울산이나 ……)에서 살며, 또 잿빛집(아파트)에서 살며 숲책을 써요. 어린이랑 함께 보는 그림책을 짓는 분도 하나같이 서울에서 삽니다. 자, 생각해 봐요. 아침저녁으로 언제나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로 하루를 짓는 사람이 쓰는 글이나 그리는 그림이랑, 잿빛집에서 요일에 맞추어 쓰레기를 내놓고 혼씽씽이(자가용)를 몰고 온갖 가게에 둘러싸여서 사는 사람이 쓰는 글이나 그림을 함께 놓고 본다면, 얼마나 다를까요? 서울에서 살면서도 숲책은 얼마든지 쓸 만하다고 봅니다만, 이모저모 오늘날 숲책을 헤아리고 보면, 너무 뻔해요. 숲책을 쓰면서 왜 숲이나 시골 아닌 서울에서 굳이 살까요? 숲책을 쓰는 분들은 왜 숲에 안 가고 ‘공원’이랑 ‘수목원’에서 쳇바퀴질만 할까요? 서울이란 데에서 ‘되살림’을 하는 길을 말하는 숲책을 쓰기보다는, 숲이나 시골에서 살며 ‘손수 짓고 손수 누려서 쓰레기 하나조차 없는 홀가분한 살림길’을 쓰면 그야말로 아름답지 않을까요? 요즈음 흐름을 보면 페미니즘뿐 아니라 생태환경마저 ‘쓰고 버리기(소비)’만 가득하구나 싶습니다. 참다이 숲을 말하는 숲책은 눈씻고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숲책 아닌 ‘서울첵’을 쓰면서 껍데기만 숲책(생태환경책)인 척 뒤집어씌우는 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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