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숲이 있어야 산다 (2020.10.30.)

― 전주 〈살림책방〉


  숲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숲을 곁에 두고서 숨을 쉽니다. 숲이 없는 터를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숲이 없는 곳은 누가 살아갈 만할까요? 숲이 없으면 숨이 막힐 뿐 아니라, 아예 숨조차 못 쉬지 않을까요? 제아무리 잿빛집(아파트)에 씽씽이(자동차)가 가득한 데에서는 풀포기조차 못 돋고, 나무마저 시름시름 앓으니, 이런 데에서는 돌림앓이라든지 몸앓이가 끊이지 않을 만하리라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 됩니다. 삶을 지으면 됩니다. 못살고 잘살고를 떠나, 즐겁게 하루를 가꾸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노래하면 돼요. 이러한 삶길에 책을 곁에 두고 싶어 책집마실을 갑니다. 새벽 한 시에 전주에서 눈을 뜨고서 노래꽃(동시)을 여러 자락 씁니다. 새벽 두 시 무렵 마음을 가다듬어 붓을 쥐면 누구나 글꽃이 피어날 만하다고 봅니다. 별빛이 흐르는 이즈음은 눈빛이 가장 맑을 때요 숨빛이 더없이 고를 때예요. 서울에서건 시골에서건 다들 저녁 아홉 시쯤이면 하루를 마감하고서 새벽 두어 시쯤에 하루를 열면 좋겠습니다. 차분하고 참하면서 착하게 생각을 지어 이웃을 사귀면 참말 아름답겠지요.


  사뿐히 걸어 〈살림책방〉에 닿습니다. 마을길에 고즈넉히 깃든 이곳은 언뜻 보면 ‘바깥자리(변방)’라 할 목소리가 있을 만한데, 저는 바깥으로 찾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늘 그곳으로 가요. 제가 꿈꾸고 그리고 사랑하고 즐기고 누리고픈 길로 갑니다. 남 눈치를 봐야 하지 않아요. 제 눈길을 보면 됩니다. 마을에 포근히 안긴, 또는 마을을 폭신히 안은 이 마을책집에 깃들어 책내음을 누립니다.


  이러고서 책집을 나서는데 〈살림책방〉 앞마당에 있는 섬판(입간판) 하나를 새로 봅니다. 앞뒤로 거울을 붙인 섬판이로군요. 이 거울은 무엇을 비출까요? 이 책집에 들어서기 앞서까지 스스로 어떤 길을 걸었는가를 처음 비추고, 이 책집에 깃들어 책바람을 마시고 돌아설 적에 스스로 둘레에 어떤 빛을 흩뿌리거나 심는 길을 걸을는지를 비추지 않을까요?


  저녁 일곱 시에 〈잘 익은 언어들〉에서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함씽씽(버스)’을 타고 가려고 길그림을 살핍니다. 문득 ‘함씽씽’이란 낱말이 머리를 스칩니다. 빨리 달릴 적에 “씽씽 달린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은 예전부터 ‘빠른 것’을 ‘씽씽이’라 했고, 장난감을 ‘씽씽카’라고도 했어요. 이 말씨를 살리면 ‘혼씽씽(자가용)·함씽씽(버스)’처럼 새말을 지을 만합니다. 재미있어요.


  그런데 다음 마을책집까지 달릴 함씽씽이 오자면 20분이 넘는답니다. 그럼 걷기로 하지요. 걸어서 다음 마을책집에 닿을 무렵 여기에 함씽씽이 오겠지요. 씽씽달림이 아닌 느긋걸음으로 냇가를 걷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사뿐사뿐 춤추는 걸음걸이로 나아갑니다. 햇볕이 아늑하고 가랑잎이 바람 따라 구르며 조잘조잘합니다.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제라르 마종/전용희 옮김, 펜연필독약, 2017.9.28.)

《차의 맛, 교토 잇포도》(와타나베 미야코/송혜진 옮김, 컴인, 2019.6.2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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