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102줄) 

48. 틈새두기


  ‘슈퍼전파자’는 ‘super-spreader’라는 영어를 옮긴 말씨라는데, 이런 말이 갑자기 퍼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앓거나 아픈 이웃을 돌보려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 탓으로 돌리면서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낱말에 담았거든요. 살짝 앓든 크게 아프든 앓거나 아픈 이웃이 있을 적에는 더욱 사랑을 기울이는 손길로 보듬은 우리 살림길이었다고 생각해요. 오늘날은 그야말로 어깨동무라는 마음이 확 사라지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 있어야 한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못나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스런 모습을 나타내는 말을 새로 지어야 할까요. 아니면 영어나 일본 말씨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 모습이나 몸짓이나 일을 가리킬 적에 두렵거나 미운 티를 걷어낼 노릇이라고 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확 퍼뜨린다고 하기에 ‘슈퍼 + 전파 + 자’라면, 누구보다 확 퍼뜨린다고 하겠지요. 누구보다 세거나 크다면 이러한 모습을 ‘꼭두·으뜸’으로 나타냅니다. 무엇을 퍼뜨릴 적에는 ‘씨·씨앗’이란 말로 빗대곤 합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꼭두씨·꼭두씨앗’이나 ‘으뜸씨·으뜸씨앗’이 될 만합니다. ‘꼭두씨앗·으뜸씨앗’ 같은 낱말은 ‘시초·시원·시작’ 같은 한자말을 풀어내는 자리에도 쓸 만합니다.


 서로 떨어지기


  2020년 한 해는 아무래도 ‘사회적 거리두기(社會的 距離-)’란 말씨로 이야기할 만합니다. 어디를 가나 온통 이 말이 넘칩니다. 걸개천으로도 나붙고 시골 알림말로도 퍼지며 여기저기에서 흔히 듣습니다.


  가만히 보자면 시골은 워낙 예부터 서로 떨어져 살았습니다. 마을로 모이기도 하지만, 마을에 모인 집은 울타리뿐 아니라 나무를 심어 서로 알맞게 떨어져요. 나무가 자라는 틈만큼 떨어진달까요.


  섬이나 바닷가에서는 옹기종기 붙어서 함께 바람막이를 하지만, 여느 들이나 숲에서는 으레 띄엄띄엄 지내요. 두레나 품앗이나 울력을 하자고 모이곤 하지만, 여느 때에는 저마다 조용히 지내던 시골살림입니다. 이와 달리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은 다닥다닥 있어요. 그야말로 빈틈이 없는 서울이요 큰고장입니다. 서울이나 큰고장은 나무 한 그루 자를 틈바구니가 없습니다. 애써 자란 나무라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뎅겅 자르거나 뿌리를 뽑습니다.


 틈·틈새·떨어지기·띄엄띄엄


  쉴 틈이 없이 일하면 지칩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쉬엄쉬엄 가야지요. 쉴 겨를이나 말미가 없이 몰아치면 고달픕니다. 아무리 일이 쌓여도 조금씩 겨를도 내고 말미도 누려야지요. 차 한 모금을 하든, 담배 한 개비를 태우든, 막걸리 한 그릇을 비우든, 그저 구름바라기를 하거나 책을 읽든, 저마다 느긋하게 숨을 돌리는 틈새가 있어야 일하는 기운이 새로 솟기 마련입니다.


  자, 그렇다면 서울이며 큰고장도 이제는 틈을 둘 노릇이에요. 가게나 집을 빼곡하게 놓을 일이 아닙니다. 자동차를 대느라 빈터가 사라지면 안 될 일입니다. 되도록 집 사이사이에 빈터를 마련하거나 나무가 자라도록 하고, 가게가 가득한 길거리라 해도 곳곳에 걸상이며 너른터를 둘 노릇입니다.


  푸른별에 확 퍼진 돌림앓이는 요 백 해 사이에 너울치듯 뒤바뀐 도시물질문명이란 길을 멈추라고, 틈바구니 하나 없이 기계나 자동차나 전기나 아스팔트나 시멘트나 플라스틱을 쏟아붓지 말라고 알려주지 싶습니다. 이름부터 알쏭하거나 어린이한테 너무 어려운, 또 일본 한자말스러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띄엄서기·띄엄있기’나 ‘띄엄살림’으로 나아가자고 알려주는구나 싶어요. ‘서로 떨어지기·서로 벌어지기’를 하자고, ‘틈새두기’를 하고 ‘틈새살림’이 되자고 속삭이는구나 싶어요.


  너무 빈틈없이 걸어온 우리 발자국이에요. 바늘 하나 들어갈 귀퉁이조차 없는 우리 발걸음이에요. 느긋하지 않은 사람은 일에 치여서 쓰러져요. 느긋하지 않은 사람은 아이 곁에서 활짝 웃으며 노래하고 춤출 줄 몰라요. 느긋할 적에는 마음이 넓지만, 느긋하지 않을 적에는 마음이 비좁아요. ‘느긋하다 = 나긋하다 = 넉넉하다 = 넓다 = 너르다 = 널리’처럼 가지를 칩니다.


 꽃이 필 틈


  사전을 보면 ‘화도(花道)’를 “나뭇가지나 화초 따위에 인공을 가하여 풍취(風趣)를 더하는 기술”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일본에서 ‘はなみち(花道)’처럼 으레 쓰고, 이 일본말은 “1. 歌舞伎에서 관람석을 건너질러 만든 배우들의 통로 2. 씨름판에서 씨름꾼이 출입하는 길 3. 활약하던 사람이 아깝게 은퇴하는 시기 4. 눈부신 활약을 시작하려는 때”를 가리킨다지요.


  곰곰이 보면 우리나라에 어느 때부터 문득 퍼진 ‘꽃길’은 일본 말씨를 옮겼구나 싶습니다. 다만 일본 말씨에서 퍼진 ‘꽃길’이라 해도, 우리 스스로 꽃을 사랑하고 반기면서 이러한 말씨를 새로 일구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사전을 보면 한자말 ‘화도’를 열두 가지나 싣는데요, 어느 하나도 쓸모가 없어요. 죄 군더더기입니다.


  봄에 피는 봄꽃을, 여름에 피는 여름꽃을, 가을에 피는 가을꽃을 그려 봐요. 그리고 겨울에 피는 겨울꽃을 고요히 두 눈에 담아 봐요. 푸나무에 꽃이 필 틈이 없다면 푸나무는 열매를 못 맺습니다. 열매를 못 맺는 푸나무라면 씨앗을 못 남깁니다. 씨앗을 못 남기는 푸나무라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겠지요.


  씨앗이란 열매이면서 새로운 숨결입니다. 씨앗이란 어제 그곳에서 태어나 오늘 이곳에서 놀다가 모레 저곳으로 나아가려는 빛줄기예요.


  두려움이나 미움이 아닌 사랑을 포근히 마음에 담으면 좋겠어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을 따른다기보다 ‘아픈 동무한테 더욱 마음을 쓴다’는 살림말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을 적에는 물이 맑고 바람이 깨끗하고 풀내음이 고우며 숲빛이 싱그러운 곳으로 보낸다고 했어요. 아픈 사람을 꽉 막힌 곳에 외롭게 가두지 않던 우리 살림길입니다.


  서울이며 큰고장에서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곳이 너무 꽉 막힌 탓이에요. 빈틈이 없으니 쉴 만한 틈이 없고 꽃이 필 만한 틈마저 없는 탓입니다. 꽃이 필 틈이 없는 곳에서는 풀꽃나무를 못 누릴 테고, 철마다 다른 바람이며 햇살이며 빗방울도 못 느끼겠지요. 밥을 고루 먹어야만 튼튼하지 않아요. 철에 맞추어 바람이며 햇살이며 빗물이며 냇물을 고루 누려야 튼튼해요. 두 손에 풀빛을 담고 두 발에 나무빛을 얹고 온몸에 하늘빛을 실을 적에 튼튼합니다.


  한밤에 별빛 아닌 전깃불빛이 넘치는 서울이며 큰고장에서는 누구나 아플밖에 없어요. 이제 삽질을 그치기로 해요. 한밤에 별빛을 마주하고 미리내를 두 눈에 듬뿍 담을 수 있어야, 한낮에 구름빛을 바라보고 바람숨을 가득 먹을 수 있어야 다같이 튼튼하면서 즐거운 나날이 되리라 생각해요.


  삶이 튼튼하면서 생각이 튼튼하고, 생각이 튼튼하다면 마음이 튼튼할 테며, 이 튼튼한 마음에서 비롯하는 말 한 마디는 그지없이 숲빛이 가득한 푸르게 일렁이는 노래가 될 만하다고 봅니다.


  아무 말이나 안 쓰면 좋겠습니다. 생각하면서 말하면 좋겠습니다. 정부나 사회나 언론이나 학교에서 퍼지는 말은 내려놓고, 우리 나름대로 마을빛을 가꾸고 마을살림을 북돋우며 마을이웃을 사랑할 만한 말을 즐겁게 생각하기를 바라요. 나랑 너는 다르기에 동무가 되고 이웃이 돼요.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어깨동무를 해요. 마음으로 아끼고 생각으로 살찌우는 말 한 마디는 바로 우리 삶에 ‘숨쉴틈’을 둘 적에 피어납니다. 이 틈은 곁이 되고, 곁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씨앗 한 톨로 어느새 무르익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