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씨앗한테 물주기 : 마늘싹이 엊그제 마음으로 나한테 들려준 노래를 옮겨적었다. “우리(씨앗)는 너희(사람) 손길을 받으면 반가워. 즐거워서 확 달라오르고 웃음이 나와. 그런데 우리는 굳이 너희 손길을 받을 까닭이 없어. 너희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의젓하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푸른바람으로 들숲을 빛내기에 너희가 이 풀물결을 마주하면서 기뻐서 웃음지을 적에 우리도 새삼스레 기쁘단다. 우린 이슬을 먹기에 따로 물을 안 줘도 되는데, 너희가 물을 줄 때마다 길들어서, 너희 물이 없으면 말라버리는 아이들이 있어.” 이렇게 옮겨적고서 생각에 잠기다가 밤에 꿈을 꾼다. 꿈에서 내 몸은 씨앗이 되어 들을 누비고, 때로는 물방울이 되어 구름을 누빈다. 다시 씨앗이 되어 숲에 깃들고, 어느새 아지랑이가 되어 바람을 탄다. 이렇게 갖은 몸이 되는 사이에 새롭게 헤아린다. 들이나 숲에서 푸나무가 떨군 씨앗 가운데 사람이 애써 심거나 물을 주는 일이란 없는데, 들이며 숲은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우며 아름답다. 풀씨나 꽃씨나 나무씨는 어느 만큼 잠을 잔 다음에 어느 때에 알맞게 깨어나서 삶을 지으면 튼튼한가를 다 아는 셈이지 싶다. 사람은 어떨까?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얼마나 보여주고 이끌고 가르쳐야 하는가? 어른이나 어버이가 무엇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치더라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미리 꿈꾼 길에 맞추어 하나씩 새롭게 맞이하면서 삶을 짓지 않는가? 오늘날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싹트고 뿌리내리면서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운 다음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까지 나아갈 길을 모두 똑같은 틀에 가두지 않는가? 다 다른 씨앗을 모조리 똑같이 짜맞춘 뒤에, 언제나 똑같은 먹이에 길들도록 내모는 셈 아닌가? 농약·비료·비닐·기계·전기·석유가 아니라면 도무지 싹트지도 못하고 자라나지도 못하도록 아이들(씨앗)을 송두리째 가둔 오늘날 제도권 교육이자 학교이자 마을이자 터전은 아닐까? 어른은 하늘이 되어 바람을 품고 구름하고 노니는 숨결로 가야지 싶다. 어버이는 바다가 되어 물방울을 품고 빗방울로 온누리를 적시고 보듬는 숨빛으로 가야지 싶다. 2020.10.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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