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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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40


《시와 산책》

 한정원

 시간의흐름

 2020.6.30.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 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14쪽)


숲에서 길을 잃기 좋은 때가 두 번 있는데, 폭설이 내린 다음 날과 11월의 아무 날이다. (39쪽)


신호등의 초록색이 사라지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기까지는 반 년, 떠나려는 버스를 잡으려고 약간 달음박질을 할 수 있기까지는 1년, 발목을 접어 앉을 수 있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91쪽)


아이들은 늘 전학생을 두고 귓속말을 했고, 신기한 소문을 만들어 왔다. (122쪽)


내 편에서의 진실과 그녀 편에서의 진실이 다를 때, 그것은 어떻게 전해져야 아무도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143쪽)



  둘레를 살피면 모두 노래입니다. 자동차가 구르건 자전거가 달리건 노래입니다. 어린이가 콩콩 뛰건 도리깨질이나 깨바심을 하건 그저 노래예요. 구름이 흐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비가 흩뿌리는 노래를 들어요. 무엇이든 노래입니다.


  큰고장에서는 큰고장대로 길이며 마을을 그득히 덮은 가게마다 다른 살림이 노래입니다. 숲에서는 숲대로 나무마다 다른 숨결이며 빛이 고스란히 노래입니다. 둥지에서 갓 깨어난 새끼 새는 모두 다른 목숨입니다. 저마다 다른 몸에 다른 크기로 노래를 하지요.


  걸어온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이제부터 걸어갈 삶을 고루 생각하는 줄거리를 담은 《시와 산책》(한정원, 시간의흐름, 2020)입니다. 글쓴님은 스스로 겪거나 느낀 대로 생각합니다. 겪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 일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생각도 못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그렇거든요. 서울사람은 시골살이를 생각하지 못해요. 시골사람도 서울살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렁이알이나 거미알이나 사마귀알을 못 본 사람이 우렁이알이나 거미알이나 사마귀알을 생각할 틈도 자리도 없습니다. 인문책만 읽는 사람은 그림책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림책만 읽는 사람은 만화책을 생각하지 못해요. 신문글만 읽는 사람은 흙살림을 생각하지 못하고, 흙살림을 하는 사람은 신문글을 생각할 일이 없어요.


  더 많이 겪거나 해보거나 느껴야 더 많이 쓰지는 않아요. 조그맣구나 싶은 한 가지를 겪거나 해보거나 느끼더라도 즐겁게 사랑하는 눈빛이라면 반짝반짝 싱그러이 글감이 쏟아지리라 봅니다.


  삶은 언제나 마실이에요. ‘마실’이란 ‘마을’이에요. ‘마을’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마실을 한다’는 말은 ‘우리 삶터를 두루 헤아리면서 마주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마실을 하는 삶이니, 이 삶을 그대로 돌보는 손길이라면 노래(시) 한 자락은 스스럼없이 흘러나와요. 보기좋게 안 꾸며도 될 글입니다. 그럴듯하게 안 치레해도 될 노래입니다. 붓끝에서 힘을 좀 덜어내고서, 바로 이 붓끝에 풀바람이며 꽃바람이며 나무바람을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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