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계급장을 떼어놓고 읽기 : 내가 사서 읽는 책 가운데 ‘안 팔리거나 적게 팔리는 책’이 많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는 책’은 굳이 덜 읽거나, 애써 읽었어도 웬만해서는 말을 않고 지나가려 할 뿐이다. 책이야기를 쓰는 까닭은 둘로 나눌 만하다. 첫째, 안 팔리거나 적게 팔리는 책이던데, 우리 이웃님이 이 아름책을 부디 즐겁게 알아보고서 슬기롭게 헤아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숲을 온마음으로 품기를 바라는 뜻이다. 둘째,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는 책에 씌운 꺼풀이나 껍데기나 겉멋이나 겉치레나 겉발림을 벗겨내어 민낯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러한 이름팔이·돈팔이·끈팔이(인맥팔이)라는 허울을 우리 이웃님 스스로 떨치는 길에 징검돌이 되려는 뜻이다.


글이나 책을 왜 쓰는가? 읽히려고 쓰는 글이나 책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그리면서 생각을 짓는 즐거운 하루를 사랑으로 나누려는 꿈이 있기에, 이 꿈을 말이나 글이라는 씨앗으로 고이 묻는 손길로 쓴다.


글이나 책을 왜 읽는가? ‘누구 글이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려고 읽는가? ‘나, 그 책 읽었다’ 하고 내세우려고 읽는가? 우리는 이름있는 책도 이름없는 책도 읽을 까닭이 없다. 잘 팔리는 책도 안 팔리는 책도 읽을 까닭이 없다. 오직 ‘삶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림이라는 사랑’을 새롭게 깨닫고 펴는 신나는 오늘을 살아내는 보람을 누리려고 읽고 쓴다.


나는 어느 글이나 책을 읽든 허울(계급장)을 모조리 떼어놓는다.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을 안 가린다. 글쓴이나 펴낸곳이 대단하든 새내기이든 대수롭지 않다. 첫 줄부터 끝 줄까지 글쓴이 숨결이나 펴낸곳 숨빛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읽으려 한다. 이녁이 사랑으로 글을 썼는지, 이름·돈·힘을 거머쥐려는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읽는다. 한자말로 하자면 ‘행간’을 읽으라고 하던데, ‘글씨에 흐르는 마음’을 읽으려고 책을 손에 쥐지 않는가?


나더러, 이름높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시집이나 인문책이나 사진책을 놓고서 ‘평점을 매우 짜게 준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름높다는 그 책에 왜 ‘평점을 높게 주어야’ 할는지 아리송하다. 글씨나 그림이나 사진에 사랑을 심었다고 못 느끼는데 왜 평점을 주어야 할까? ‘평점 0’을 주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다고 느낀다만, 차마 ‘평점 0’을 매기지 않고 ‘평점 1, 2, 3, 4’ 가운데 하나를 매긴다. 왜 이렇게 평점을 매기느냐 하면, 부디 글쓴이나 펴낸곳이 그 책을 ‘거름(밑거름)’으로 삼아서 다음 책에서는 새롭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이다. 권정생 할배가 쓴 《강아지똥》에 나오듯, 글쓴이나 펴낸곳이 ‘잘 팔리는 이름값’에 스스로 갇히지 말고 그 책을 거름으로 묻어 놓고서 밑바닥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사람을 마주할 적에 그 사람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를 따져야 할까? 잘난 옷차림에 크고 까만 자가용을 몰면 그 사람하고 사귈 만한가? 웬만한 베스트셀러는 ‘잘난 옷차림에 크고 까만 자가용을 모는 껍데기’라고 느낀다.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없듯, 잘생긴 책도 못생긴 책도 없다. 그런데 적잖은 글쓴이하고 펴낸곳은 ‘잘생겨 보이려고 억지스레 꾸미는 책’을 너무 쏟아낸다. 꾸미는 글이나 책을 만나면 ‘평점 0’을 매기고 싶다. 다만 그분들이 흘린 땀값을 헤아려 ‘평점 1, 2, 3, 4’ 가운데 하나를 매길 뿐이다. 2020.9.20.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