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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나카노 지음, 최고은 옮김, 미카미 엔 원작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9월
평점 :
#TheAntique #SecretoftheOldBooks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ㅡ #三上延 #越島はぐ #ナカノ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헌책은 모름지기 손길책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미카미 엔 글
나카노 그림
최고은 옮김
디앤씨미디어
2015.9.21.
사람마다 책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인걸요. 사람마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참으로 모두 다른 숨결인걸요. 똑같은 글씨라지만 오늘까지 우리가 살아온 길에 따라 다 다른 이야기씨로 맞아들입니다. 똑같은 책이더라도 오늘까지 우리가 지은 살림에 맞춰 다 다른 생각씨앗으로 삼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안 몰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안 땁니다. 제 또래 가운데 자동차를 안 모는 이는 없다시피 하고, 운전면허마저 안 딴 사람은 거의 못 찾습니다. 이제는 집에 텔레비전을 안 모시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만, 그래도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이 참으로 드문 이 나라예요. 더구나 신문조차 안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동차를 몰거나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책하고, 자동차를 멀리하거나 운전면허마저 등진 사람이 마주하는 책은 다릅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새겨내는 줄거리도 다르지요. 어느 쪽이 옳거나 맞거나 틀리거나 그를 일이 없습니다. 그저 다르게 걸어왔고 살아갈 눈썰미로 책을 맞이합니다.
“이시가키섬이래요. 부러워요. 남쪽 섬.” “시오리코 씨도 이런 데 관심이 있습니까?” “네. 어떤 고서점이 있을까요? 지역이 다르니 구비한 책들도 다르겠죠?” (8쪽)
가난한 사람한테 헌책집은 빛입니다. 값 때문에 좀처럼 손에 못 넣은 책을 꽤 눅게 장만할 수 있거든요. 헌책집에서조차 값에 치여 손에 못 넣는 일도 흔합니다만, 새책집에서는 ‘손때가 묻을까 봐 만지지 못하게 막는’ 책을 헌책집에서는 퍽 홀가분하게 만질 수 있습니다. 책은 사랑하되 주머니가 가난한 이들은 ‘새책집 아닌 헌책집에 파묻혀서 책읽기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헌책집에서는 눈치가 덜 보이거든요. 아니, 아예 안 보이기도 합니다. 헌책집에서 책을 읽는다고 눈치를 받으면 ‘눅은 책 하나’ 장만하면 되지요.
무엇보다도 헌책집지기는 알아요. 헌책집에 파묻혀서 어느 책을 깊이 읽는 사람은 ‘헌책집에 서서 읽은 책’을 사가려 하기 마련이에요. ‘읽은 책을 왜 사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만, ‘한 벌 읽고 집어치울 책’이라면 아예 안 건드릴 노릇이에요. 모름지기 책이라 하면, 한두 벌도 서너 벌도 아닌, 스무 벌이나 쉰 벌쯤은 가볍게 되읽을 만한 줄거리로 와닿아야지 싶어요.
우리는 “나, 그 책 읽었다!” 하고 자랑할 책이 아니라 “그 책은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더라!” 하고 되새길 책을 손에 쥐어야지 싶습니다. 영화를 볼 적에도 이와 같아요. 다시 보고 또 볼 적마다 마음에 새롭게 이야기꽃이 피어날 만한 영화를 가려서 보아야지 싶어요. 적어도 온(100) 벌은 볼 영화를 가려야겠지요.
“아시즈카 후지오의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의 매입 가격은 얼마입니까?” … “저희는 고서 만화책을 거의 취급하지 않아서 전문점처럼 비싸게 사들이지는 못하지만, 백만 단위의 금액이 될지도.” (14∼15쪽)
갖은 책이 수두룩하게 태어나고, 온갖 책이 신나게 나옵니다. 이제껏 나온 책만 해도 엄청난데 어떻게 새롭다 싶은 책이 자꾸 나오느냐고 물을 만하겠지요. 그런데 책이란 새로 나오면 나올수록 더더욱 새롭게 갖가지 책이 잇달을 만해요.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내면서 저러한 이야기를 길어올려 책을 엮었다면, 나는 나대로 살림을 지으면서 나다운 이야기를 가꾸어 책을 엮고 싶은 꿈이 피어나거든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미카미 엔 글·나카노 그림/최고은 옮김, 디앤씨미디어, 2015)은 헌책집을 둘러싸고서 벌어지는 책삶을 다룹니다. 모두 여섯걸음으로 마무리짓는데, 그림결이나 짜임새가 살짝 엉성하기는 하지만, ‘책·헌책·새책’을 ‘삶·살림·사랑’이라는 자리하고 맞물려서 들려주려고 하는 줄거리는 돋보입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라 고서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면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 방법밖에 없었죠. 아버님은 가르침을 구하기에 둘도 없는 상대였을 겁니다. 어른들 이야기라 저는 밖에 나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이야기한 끝에 아버지는 원래 소장하고 계셨던 후지코 후지오의 초기 작품들을 〈비블리아 고서당〉에 파셨습니다.” (77쪽)
새책이란 뭘까요? 새로 나온 책이겠지요. 아직 손을 안 탄 책일 테고요. 헌책이란 뭘까요? 예전에 나온 책이겠지요. 벌써 손을 탄 책일 테고요. 새로 나오거나 아직 손을 안 탔다면 이 책을 둘러싼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예전에 나오거나 뭇손길을 탔다면 이 책을 감도는 이야기는 ‘손길을 탄 만큼’ 있습니다.
새책이란 언제나 한 가지 이야기만 도사린다면, 헌책이란 언제나 ‘손길 갈래’만큼 끝없구나 싶은 이야기가 춤춥니다.
가난한 책벌레한테 헌책하고 헌책집은 아름빛인데요, ‘손길 갈래만큼 끝없는 이야기’라는 대목으로 바라본다면 헌책하고 헌책집은 가멸찬 책바보한테도 아름노래가 됩니다.
모든 새책은 똑같지만, 모든 헌책은 다릅니다. 모든 새책은 똑같은 값이지만, 모든 헌책은 다른 값이에요. 모든 새책은 똑같이 다루지만, 모든 헌책은 그야말로 다 다르게 다룹니다.
“시오리코 씨는 어머님의 책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책에 담겨 있는지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읽지 않고 처분했죠.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지 않았나요? 어쩌면 책 속에 직접 메시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고요.” (152쪽)
사고파는 값이라는 눈길로 보기에 ‘새책·헌책’으로 가릅니다. 읽어낼 줄거리로 본다면 그저 ‘책’입니다. 손길을 타서 이야기가 새롭게 깃드는 얼거리로 본다면 ‘손길책’ 같은 이름을 새로 붙일 만해요.
영어로 ‘헌책집’을 ‘used bookstore’나 ‘secondhand bookshop’이라 하는데, 우리말로 새로짓자면 ‘손길책집’이라 할 만합니다. 손길을 담은 책을 다루는 곳이라서 손길책집이에요. 값으로만 보면 헌책이되, 이 책을 만난 사람들이 남기면서 두고두고 흐르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한다면 손길책이 됩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낡은 책은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155쪽)
그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추한 내용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낡은 책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인연’이 담겨 있다. (156∼157쪽)
헌책집은 언제나 ‘마을책집’ 노릇을 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읽고서 내놓은 책을 품는 헌책집이니, 이 헌책집은 ‘그 마을 이야기’가 흐르지요. 서울 헌책집하고 부산 헌책집은 서울 살림하고 부산 살림이 드러나기에 달라요. 광주 헌책집하고 제주 헌책집은 광주살이랑 제주살이가 나타나기에 다르고요.
2015년 무렵부터 차츰 피어난 새로운 마을책집은 ‘새책 한 자락에도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는 손길이 있습니다. 지식·정보·작가 유명세·출판사 지명도 같은 껍데기가 아닌, 마을에서 애써 이 책 하나를 만나면서 나눌 이야기를 조촐하게 지피려고 하는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집입니다.
자, 손을 뻗어요. 눅은 헌책에 흐르는 손길을 읽어요. 자, 손을 잡아요. 값싼 헌책에 맺힌 손빛을 읽어요. 자, 손을 씻어요. 먼지를 먹은 헌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마음을 씻고 생각을 씻고 사랑을 씻고 꿈을 씻고서 조용히 손을 씻어요. 이 손으로 우리 이야기를 이 책에 새롭게 담아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