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삶을 그리기에 사랑으로 (2019.3.3.)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저는 우리나라 소설을 안 읽습니다. 어쩐지 삶하고 등지는구나 싶고, 소설에서 담는 삶이 제가 바라보는 숲내음하고 아주 멀다고 느꼈습니다. 시는 이럭저럭 읽지만 시도 썩 당기지 않아요. 소설 못지않게 삶하고 등돌린 우리나라 시이지 싶고, 이 나라에서 시를 쓰는 분들이 들려주는 삶은 제가 마주하는 숲빛하고 그지없이 머네 싶더군요.
소설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고, 시는 띄엄띄엄 읽는데, 만화책은 샅샅이 헤아리면서 이모저모 읽습니다. 묵은 만화도 갓 나온 만화도 찬찬히 읽습니다. 모든 만화가 삶을 알뜰살뜰 담지는 않습니다만, 만화는 ‘삶이랑 꿈이랑 사랑’을 바탕으로 그리기 마련이에요. 때로는 삶이나 꿈이나 사랑 가운데 하나만 붙들고, 요새는 ‘비엘(BL)’이라고 해서 ‘사랑 아닌 살섞기’에만 치우친 만화가 지나치게 나오는데, 곰곰이 가리다 보면 만화책에서 꽤 아름답구나 싶은 빛을 엿볼 만합니다.
이를테면 《80세 마리코》라든지 《서커스의 딸 올가》 같은 만화책이 살뜰하지요.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든지 《은빛 숟가락》 같은 만화책이 사랑스럽고요. 삶을 수수하게 그리기에 사랑으로 갑니다. 사랑을 숲빛으로 마주하기에 삶을 짓습니다. 삶을 고스란히 아끼기에 슬기롭게 빛납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을 걷기에 삶이 눈부십니다. 모름지기 만화이든 문학이든 이렇게 ‘삶이랑 꿈이랑 사랑’을 언제나 하나로 엮어서 들려주거나 다루어야 우리 곁에서 책이 되지 싶어요.
순천마실을 하며 천천히 걸어 〈골목책방 서성이다〉을 들릅니다. 가볍게 다리를 쉬고서 기운을 내어 마저 저자마실을 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오늘은 순천으로 나오면서 ‘갓’이라는 노래꽃 열여섯 줄을 씁니다. 이제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랑 시골버스에서 또 새롭게 노래꽃을 써야지요.
우리 보금자리에서 하루를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하고 나눌 이야기를 노래꽃으로 여밉니다. 서울이건 큰고장이건 아파트이건 회사원이건, 그런저런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웃님한테 띄울 살림빛을 노래꽃으로 담습니다. 갓 돋은 풀잎이 싱그럽습니다.
저 멧갓에 앉은 구름이 살포시 쉽니다. 우리는 누구나 꽃갓을 쓰면서 꽃길을 걷습니다. 사내 곁에 가시내가, 가시내 곁에 사내가 있어, 둘은 갓벗(가시버시)이 됩니다. 겨울에 포근한 남녘에는 들이며 마당에 갓이 돋아 갓나물이나 갓김치를 누립니다. 갓 지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갓 깨달은 숨결이 오늘 우리 마음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모든 길은 삶이고, 모든 삶은 사랑입니다.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이내, 이후진프레스, 2018)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신미경, 뜻밖, 2018)
《일본적 마음》(김응교, 책읽는고양이, 201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