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가 뛰놀 만한 고을이 되기를 (2017.6.5.)
― 고양 〈미스터 버티고〉
아이들을 이끌고 일산 이모네에 왔습니다. 이모랑 이모부랑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을 만나는 아이들은 신납니다. 다만 아무리 이모네랑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며 신이 나도, 이 큰고장에서는 길에서고 집에서고 ‘뛰어도 안 되고, 노래해도 안 되고, 피리나 하모니카를 불어도 안 되고, 모두 안 되고투성이’입니다. 두 아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그럼 여기서는 안 되는 거 말고 뭐가 되는데?” 하고 묻습니다. 이모부는 “그래, 안 되는 것들만 있네. 이모부가 앞으로 이모하고 ‘벼리 보라가 놀라왔을 적에 실컷 뛸 수 있는’ 집으로 옮겨야겠다.” 하고 말합니다.
큰고장은 어디나 에어컨이 가득합니다. 집안이든 집밖이든 후덥지근합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바깥바람을 쐬기로 합니다. 사뿐사뿐 걸어 〈행복한 책방〉 앞에 오는데, 마침 오늘은 쉬는날이네요. 더 걸어서 〈미스터 버티고〉로 갑니다. 이곳은 열었습니다. 두 어린이한테 마실거리를 하나씩 시켜 주고서, 저는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즐길 만한 일을 할 적에는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아서 좋아하는 삶을 누리면, 이때에 사진기를 쥘 적에는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따로 사진강의를 듣거나 사진학교를 다니기보다는, 스스로 어떤 삶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즐겁게 사진을 찍지요.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도 이렇게 하면 된다고 느껴요. 읽을 만한 책을 찾을 적에도 스스로 책집마실을 하면서 가만히 둘러보면 어느새 눈길이 닿는 책이 나타나요. 낯익은 책이건 낯선 책이건 하나하나 집어들면서 펼치면 돼요. 책마다 다르면서 싱그러운 여름바람이 물씬 흘러나옵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뽑아들어 읽습니다. 혼자서 힘내는 작은 출판사 이야기가 사랑스럽습니다. 아니, 혼자서 힘내기에 사랑스럽지는 않아요. 이분들 스스로 언제나 하루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다스리려 하기에 어떠한 살림크기로 출판사를 차리든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운 길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아이들이 구경하는 그림책을 어깨너머로 같이 보다가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이룬 삶·살림·발자국은 누가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돌아보는가요? 임금이 먹거나 절에서 먹는다는 밥만 으레 ‘전통음식’으로 여겨 버릇합니다만, 수수한 살림집에서 짓던 수수한 살림밥은 언제쯤 ‘전통음식’으로 받아들일 만할까요?
저는 정치권력자가 쓰는 책을 구태여 안 읽습니다만, 대학교나 연구실에서만 붓을 쥐는 학자가 쓰는 책도 굳이 안 읽고 싶습니다. 흙을 사랑하는 살림꾼이 쓰는 ‘흙책(과학책)’이라면 반갑습니다. 숲을 사랑하는 숲지기가 쓰는 ‘숲책(환경책)’이라면 반깁니다. 보금자리에서 살림꽃을 피우는 살림꾼이 쓰는 ‘살림책(수필·육아책)’이라면 재미나요.
마을 아줌마가 들려주는 문학·정치 이야기가 태어나면 좋겠어요. 마을 아저씨가 노래하는 사회·철학 이야기가 나란히 태어나면 좋겠고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니시야마 마사코/김연한 옮김, 유유, 2017)
《고양이 그림일기》(이새벽, 책공장더불어, 2017)
《바다 100층짜리 집》(이와이 도시오/김숙 옮김, 북뱅크, 2014)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