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마음쓸 곳하고 (2020.8.16.)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어릴 적에는 ‘집’이라는 곳을 썩 반기지 않았습니다. 손찌검이나 매질이나 주먹다짐이 어디에서나 쉽게 불거지거나 터지는 판이니, 되도록 조용조용 혼자 있는다든지 마음이 맞는 동무하고 집이랑 학교를 다 잊고서 놀고 싶었어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에 서면서 ‘집’을 비로소 다시 바라봅니다. 어버이가 돈을 잔뜩 벌어서 물려줄 아파트 같은 부동산이 아닌, 두고두고 가꾸면서 언제까지나 푸르게 빛날 터전이 바로 ‘집’이로구나 하고 깨달아요.


  차 한 모금을 아늑히 누리는 찻집처럼, 꽃 한 송이를 고이 나누는 꽃집처럼, 밥 한 그릇을 넉넉히 즐기는 밥집처럼, 책 한 자락을 푸르게 주고받는 책집이 되면 즐겁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만 보면 ‘-방(房)’은 중국을 섬기던 몇몇 글쟁이가 즐기던 이름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이름을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곳에서는 ‘-집’이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집이며 사랑집 같은 숲집으로, 숲을 품으면서 책을 누리는 책숲집으로, 그리고 여러 손길이 닿거나 흐르거나 스치면서 새삼스레 이야기가 피어나는 ‘손길책집’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즐거이 찾아가고, 넉넉히 머물면서, 차분히 생각을 짓는 곳이 책집이기를 바라요. 이 마을에서는 이 마을을 노래하는 마을책집이면 좋겠어요. 큰책집도 작은책집도 좋은데, 무엇보다 ‘푸른책집’으로, ‘그림책집(그림책 + 꿈을 그리는 집)’으로 걸어가면 좋겠어요.


  〈도그책방〉에 가는 길에 ‘책집’을 놓고 노래꽃 열여섯 줄을 적어 봅니다. 책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 가다듬고, 집을 헤아리는 마음을 새로 추스르고, 마을을 돌아보는 길을 거듭 갈무리하고 싶어요. 경기 광명에서 〈책방 공책〉을 꾸리는 지기님이 쓴 《애쓰며 서 있습니다》를 집어듭니다. 애쓰며 살아가는 하루가 고스란히 깃들어 그 책집을 찾아가는 이웃님 마음으로 퍼지겠지요.


  힘쓰고 애쓰고 마음씁니다. 이 씀씀이를 떠올리면서 글쓰기를 합니다. 서로 기쁘게 만나고 싶기에 알뜰살뜰 손을 씁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쓸까요? 우리는 무엇을 쓰면서 환하게 웃음짓는 어른아이로 오늘을 맞이할까요? 해가 좋습니다. 후끈후끈 해가 사랑스럽습니다. 바람이 좋습니다. 구름을 부르는 바람이, 나무를 스치면서 시원하게 퍼지는 바람이 산뜻합니다. 한 자락 두 자락 장만해서 품는 책이 좋습니다. 이 책은 제가 먼저 읽을 테고, 아이들이 물려받을 테고, 먼먼 앞날까지 우리 책숲에서 또다시 새 손길을 만날 테지요. ㅅㄴㄹ


《애쓰며 서 있습니다》(전기숙, 밤편지, 2020)

《나의 작은 화판》(권윤덕, 돌베개, 2020)

《별이 내리는 밤에》(센주 히로시, 열매하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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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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