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질문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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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6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김민형

 인플루엔셜

 2020.8.12.



계속 정확하게 근본을 찾아가려고 할 때 근본이라는 게 없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근본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증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수학적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34쪽)


죄송하지만, 저는 산수와 수학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특별히 다른 것인지 의문입니다. 교육과정에서 당연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알아야 할 배경지식도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순간 산수가 수학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학과 산수에 경계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122쪽)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을 어디에 쓰냐는 질문을 앞서 해주셨는데요, 놀랍게도 정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입니다. (141쪽)


미세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는 물질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형태가 불분명해진다고 합니다. ‘모양이 없어지는 현상’과 대수적인 실체는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391쪽)



  요즈음에는 가게에서 셈장난을 하는 일이 없겠지요. 작대기를 긁으면 값이 척척 나오고, 셈판을 안 쓰더라도 더하기를 착착 하거든요. 지난날에는 가게에서 주판을 놓거나 셈판을 쓰거나 손으로 종이에 더하기를 하면서 셈을 했어요. 이때에 일부러 덧씌우는 곳이 있었지요.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게를 다녀올 적마다 무엇을 사고 값이 얼마인가를 머리로 빠르게 셈했어요. 에누리를 조금씩 해주는 가게가 있는데요, 1000원어치마다 50원을 에누리하는 가게라면 더하기뿐 아니라 빼기까지 미리 셈해 놓습니다.


  가게에서 하는 셈에 속아서 바가지를 쓴 일은 없습니다. 가게지기 셈이 틀렸다 싶으면 “저기요, 얼마 아닌가요?” 하고 되물었어요. 미리 다 셈을 한걸요. 때로는 가게지기가 값을 적게 셈한 적이 있는데, ‘와, 그동안 바가지를 씌우던 분이 용케 셈이 틀리네?’ 하고 여기면서 그냥 나와서 집으로 가다가 아무래도 찜찜합니다. “저기요, 아주머니 아까 셈을 틀리게 하신 듯해요. 제가 500원을 더 내야 맞지 않나요?” 가게지기는 다시 셈하더니 “덜 냈다고 너처럼 돈을 다시 가져오는 손님은 처음 봤다. 200원은 네 용돈으로 해라.” 하면서 100원 두 닢을 내어주신 분이 있어요.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김민형, 인플루엔셜, 2020)을 읽으며 셈길을 되새깁니다. 참말로 이제는 덧셈뺄셈으로 속여먹는 짓은 자취를 감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푼돈을 바라보는 덧셈뺄셈을 넘어서, 크게 속여먹는 짓은 곳곳에 있다고 느껴요.


  우리는 왜 셈을 엉뚱하게 하려 들까요? 우리는 왜 즐겁게 셈을 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터전으로 가꾸는 길하고 등지려 할까요? 우리 쪽한테 이바지하면 셈을 속여도 될까요? 저쪽은 덜 가져가도록 장난질을 해야 즐거울까요?


  글쓴님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에서 ‘수학·산수’가 다른 말이 아니라고 여긴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조금 더 뻗는다면, ‘셈’이라는 낱말도 매한가지예요. 수학자 가운데 스스로 ‘셈꾼·셈지기’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을 아직 못 봤습니다. 수학자 스스로 ‘셈’이라는 낱말에 흐르는 너비나 깊이를 제대로 안다면 ‘수학·산수’가 다른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말 ‘셈’이 ‘세다·헤아리다·생각’하고 맞물리는 줄 제대로 읽겠지요.


  수학이라는 길은 참말로 ‘생각길’이거든요. ‘셈’은 ‘생각’을 나타내는 대단히 오래된 낱말이에요. 머리를 움직이는 길이기에 셈입니다. 머리를 써서 삶을 밝히는 길이라서 셈입니다. 셈속이 있기에 슬기롭습니다. 셈이 밝으니 똑똑합니다. 셈이 환하니 마음을 틔웁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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