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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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별에 푸른책집 (2017.5.24.)

― 대전 〈우분투북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밝히고, 고요하면서 정갈한, 이러면서 따스하고 넉넉한, 이러면서 슬기롭고 참다운 사랑이란 마음이 된다면, 비바람을 기꺼이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숲이 되겠지요. 온누리에 흐르는 싱그러운 빛줄기를 기꺼이 맞아들일 줄 안다면, 우리가 손에 쥐는 책은 언제나 새롭게 반짝이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아직 큰고장에 살 적에는 언제나 책한테만 말을 걸었습니다. 큰고장에서는 마음을 터놓을 벗님이 오직 책뿐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찾아가는 곳은 책집이요, 이 책집이 불을 끄고 닫을 때까지 눌러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한 달 살림을 어림해서 날마다 쓸 수 있는 책값을 나누어, 날마다 이 돈으로 책을 다 장만하고는 찻삯이 없이 등이며 손에 묵직한 책짐을 이고 들고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살며 밤 열 시나 열한 시가 되어 등이며 두 손에 책을 가득가득 짊어지고서 한겨울에도 땀을 쪼옥 빼며 걷는 사내가 있었어요. 전철삯마저 없으니 한두 시간쯤 영차영차 걸었습니다. 책집에서 나오면 어디나 시끌벅적하고 눈이 아팠어요. 책집에 머물면 언제나 조용하면서 눈이 트였어요.


  대전에 피어난 〈우분투북스〉는 큰고장하고 시골을 잇는 다리가 되려는 뜻을 이웃하고 나누려 한답니다. 책 한 자락으로 푸른 숨결을 나누고, 책뿐 아니라 ‘시골에서 지은 살림’을 큰고장 이웃한테 알려주는 길목이 되려 한다지요. 책집지기이자 마을지기가 되고픈 꿈을 펼치는구나 싶습니다. 책집이 책숲으로 나아가는 실타래를 한 올씩 엮는 걸음걸이로구나 싶어요.


  어느 때부터인가 ‘지구’라는 낱말을 썩 안 쓰고 싶습니다. ‘지구’가 한자말이라서 안 쓸 생각이 아니에요. 이 낱말로는 어린이한테 우리가 사는 이 별을 제대로 이야기하기 안 좋겠구나 싶더군요. ‘푸른별’이란 낱말을 씁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곳은 ‘푸른별’이라는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도 별에 산다고, 우리가 사는 별이 더 커다란 별누리에서 초롱초롱 맑게 흐르면 좋겠다는 뜻을 나누고 싶어요. 누구보다 어린이가 이 마음을 함께하면 좋겠어요. 어린이를 아끼고 돌보는 모든 어른도 이 넋이 된다면 더욱 좋겠고요.


  큼지막한 그림책 《꿀벌》을 넘깁니다. 옮김말은 어린이가 읽기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하나하나 풀어내어 읽어 주어야겠네요. 애써 알찬 책을 펴낼 적에는 말씨를 더욱 가다듬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끼리 쓰는 인문학스러운 말씨가 아닌, 이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푸르게 꿈을 그리고 해맑게 사랑을 노래하는 말씨로 추스르면 아름다우리라 여겨요. 푸른별에서 푸르게 물드는 책집, 그러고 보면 이러한 책집은 ‘푸른책집’이 되겠네요. 푸른마을에 푸른지기가 일하는 푸른책집에서 푸른책을 만나고 푸른살림을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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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레나 안데르손/오숙은 옮김, 미래사, 2003)

《꿀벌》(보이치에흐 그라이코브스키 글·피오트르 소하 그림/이지원 옮김, 풀빛, 2017)

《어디에서 왔을까? 과일의 비밀》(모리구치 미쓰루/이진원 옮김, 봄나무, 2016)

《둥지로부터 배우다》(스즈키 마모루/황선종 옮김, 더숲,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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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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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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