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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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야기입니다. 올해에 새로 내놓을 책에 실을 글인데, 예전에 다녀온 책집 이야기를 아예 새로 쓰다시피 손질했습니다. 부디 이 글이 '책집골목-책집거리'를 헤아리는 분들한테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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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골목 (2011.9.10.)

― 부산 〈충남서점〉


  새책집 여러 곳이 나란히 있는 책집골목이나 책집거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똑같다 싶은 책’이 있을 테니 쉽지 않을 만합니다만, 저마다 다른 갈래를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갈무리하고 건사하는 ‘빛깔 있는 책집’으로 가꾸면 돼요.


  날마다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이 모든 새책집에 꽂히지는 않습니다. 책꽂이에 하루도 꽂히지 못한 채 스러지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누가 찾으면 그제서야 갖다 놓기는 하되, 꽂지 않고 ‘물어본 사람한테 바로 건넬’ 뿐입니다. 이 대목을 헤아려 새책집마다 다 다른 빛깔로 다 다른 갈래 책을 알뜰히 그러모으면, 새책집마다 새롭고 재미난 책시렁을 누릴 만해요. 참고서뿐 아니라 베스트셀러랑 스테디셀러까지 치우면서, ‘책집지기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고 싶은 아름책’을 정갈하게 그러모아 알려주고 보여주어 다루는 책집골목이나 책집거리를 이룰 만합니다.


  이른아침에 보수동 헌책집골목이 기지개를 켤 무렵 천천히 거닙니다. 이곳에서 두어 자락, 이다음 곳에서 두어 자락, 그다음 집에서 석 자락씩 고르니, 어느새 책꾸러미가 묵직합니다. 열 군데 책집에서 두 자락씩만 골라도 스무 자락입니다.


  두 손이 무거워 보수장 여관으로 갑니다. 이곳에 여러 날 묵으며 보수동 헌책집골목에서 책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침부터 책집마실을 하며 고른 책을 여관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빈 종이꾸러미를 몇 얻어서, 그날그날 고르는 책을 차곡차곡 담습니다. 시골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책꾸러미를 그득 채워 부치려고요.


  새로 빈손이 되어 헌책집골목에 섭니다. 〈충남서점〉에 들릅니다. 1936년에 태어난 오진태 님이 1981년에 내놓은 사진책 《바닷소리》를 읽습니다. 사진책 《바닷소리》는 부산에 있는 인쇄소에서 찍었습니다. “갯가에서 나서 갯가에 살고 있읍니다(맺음말).” 하는 말을 읽고, “이제 여기 몇 점 바다 내음의 조각들을 모아 보았읍니다(맺음말).” 하는 말을 읽습니다. 책끝에 실은 오진태 님 모습은 최민식 님이 찍었습니다. 오진태 님은 1969년에 중앙일보 사진콘테스트 금상을 받고, 1975년에 신동아 초대작품 14점 ‘바다의 삶’을 내놓았답니다. 바다를 좋아하면서, 또는 바닷가에서 태어나면서, 바다를 마음에 담고, 바다를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찬찬히 사진을 찍으셨겠지요. 문득 부산문화재단이나 부산시청 같은 데에서 오진태 님 같은 사진가들 옛 사진책을 하나둘 캐내어 새롭게 다시 펴낼 수 있으면, 또 지난날 내놓은 사진책에 담지 못한 필름을 더 찾아내어 한결 알차게 펴낼 수 있으면, 이렇게 해서 부산에서 부산 나름대로 사진빛 일구고 책빛을 엮을 수 있으면, 부산에서 나고 자라는 젊은이가 부산에서 즐겁게 나아갈 사진길과 책길과 삶길을 즐겁게 일굴 만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먼 길바닥돌은 그만 까뒤집고.


《시골 장터 이야기》(정영신 글·유성호 그림, 진선, 2002)

《바닷소리》(오진태, 세명출판사, 1981)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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