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푸르게 부르는 노래를 (2018.10.8.)
― 서울 신촌 〈글벗서점〉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시)를 추리는 분을 보면 으레 외곬이라고 느낍니다. 외곬로 추리기에 아쉽다기보다, 누구나 스스로 읽은 만큼만 아니까 외곬로 보일 수 있을 테고, 스스로 읽지 않거나 알려 하지 않는다면 끝끝내 외곬로만 나아갈 뿐이지 싶습니다.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놓고 글을 쓴 분이 많습니다만, 입시지옥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입시지옥에 눌려 고단한 아이들·입시지옥 아닌 삶을 바라보고 싶은 아이들을 마주하며 글을 쓴 분은 뜻밖에 얼마 없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글꾼치고 이녁 아이를 졸업장학교에 안 보내는 분은 아예 없지 싶어요. 그러나 글꾼뿐일까요. 정치꾼이며 벼슬꾼은 더더욱 이녁 아이를 서울 쪽 대학교에 넣으려고 애씁니다.
시멘트로 척척 바른 겹집, 이른바 아파트로는 집이 못 됩니다. 고작 서른 해나 쉰 해도 못 버티고 허물 시멘트덩이는 집이 아니거든요. 마당이 없어 콩콩 뛰거나 달리지 못하는 데를 집이라 할 수 없어요. 가만 보면 아파트를 늘리니 집값이 더 뜁니다. ‘마당 있는 작은집’으로 마을을 가꾸어야 서울 같은 고장이 작은길로 갈 테며, 집값이 가라앉겠지요. 또 아파트 아닌 ‘마당 있는 작은집’을 바탕으로 정치·경제·문화·교육 모두 나라 곳곳으로 알맞게 나눌 적에 어느 고장에서나 포근하게 어우러지면서 넉넉할 테고요. 모든 시·군에 대학교를 꼭 하나씩만 둬 봐요. 막삽질은 바로 사라집니다. 교수도 교사처럼 몇 해마다 돌아다니도록 하면 되고요.
풀잇길은 쉽습니다. 어려우면 풀잇길이 아닙니다. 밥그릇을 움켜쥐려 하니 풀잇길을 안 내놓을 뿐이요, 쇠밥그릇이 되려 하니 풀잇길하고 동떨어진 시늉질을 합니다. 시늉질을 걷어차는 노래를 씩씩하면서 따스히 부른 두 사람 김남주·고정희 시를 새삼스레 되읽고 싶어 하나씩 고릅니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이 보여 펼치는데, 왜 ‘마지막’이란 말을 붙일까요? 여기 ‘사전 쓰는 길’을 걷는 사람이 버젓이 이 헌책집에 들러서 ‘사전 지으며 곁에 둘 책’을 신나게 살피는데요.
글을 쓰거나,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모임·벼슬을 이루는 분들이 부디 울타리를 허물기를 빕니다. 울타리를 세우면 그분들 스스로 눈길이 좁고 얕기 마련이라, 온누리에 가득한 아름다운 책이며 삶이며 숲을 모르는 채 쳇바퀴가 되고 말아요.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정철, 사계절, 2017)
《콩글리시 찬가》(신견식, 뿌리와이파리, 2016)
《타자기를 치켜세움》(폴 오스터·샘 메서/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3)
《뱀사골에서 쓴 편지》(고정희, 미래사, 1991)
《사상의 거처》(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1)
《한국의 고건축 1∼7》(광장)
서울 마포구 신촌로 48
02.333.1382.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