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수레아이 : 우리 집 두 어린이는 아기수레에 탄 적이 없다. 두 어린이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업거나 안은 품에서 자랐다. 언제인가 곁님이 말했다. “아기를 수레에 태우는 짓은 차마 못하겠어요.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길이 안 좋아서 반반한 길이 없어 수레를 밀면 덜덜 떨릴 텐데, 아기를 수레에 태우면 아기는 내내 덜덜 떨리는 채 살아야 해요.” 두 아이를 낳기 앞서 혼자 살 무렵에는 늘 자전거를 탔기에 우리나라 길바닥에 얼마나 엉터리인지 잘 안다. 곁님 말마따나 엉터리투성이 길바닥에서 아기수레를 굴리자면 아기는 수레를 벗어나는 날까지 ‘덜덜덜거리는 길바닥’에서 둘레를 쳐다보아야 한다. 잠인들 제대로 잘까? 포대기나 처네에 감겨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업히는 아기는 온누리에 둘도 없이 해맑은 낯빛이기 마련이다. 아기를 업은 어버이는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기를 업어야 하는데, 우리 집 두 아이를 떠올리노라면, ‘아기는 어버이 땀내음에 밴 싱그러운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크는구나 싶다. 업혀서 자라는 아기는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는 마음을 저절로 배운달까. 이와 달리 수레에 덜덜덜 끌리면서 보내야 하는 아기는 어버이를 사랑하기 어렵겠다고 느낀다. 내내 덜덜 떨리면서 길바닥을 구르면서 시끄럽고 고단하니 자꾸 악에 받치고 사나운 마음으로 바뀌는구나 싶다. 아기를 수레에 앉히지 않으면 좋겠다. 아기수레가 아예 없으면 좋겠다. 아기는 안거나 업으면 좋겠다. 어버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기만 하면서도 아기한테 사랑을 가르치면서 물려주고,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배우면서 물려받으니까. 수레에 탄 아기는 뭘 보고 느낄까? 덜덜질 빼고 뭐가 있을까? 2020.6.2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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