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손수 지으니 아름답네 (2017.3.4.)


― 경북 포항 〈달팽이책방〉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10번길 32

070.7532.3316.

https://www.instagram.com/bookshopsnail



  어떤 눈으로 보느냐로 모두 달라집니다. 아이들이 손수 빵을 굽겠다고 나서서 용을 썼는데 그만 태워먹을 적에, 하하 웃으면서 “어쩜 탄 빵이 이렇게 맛있을까?” 하고 맞아들이는 길이 있다면 “불판까지 태워먹었구나!” 하고 으르렁거리는 길이 있지요. 예전에 사서 읽고는 까맣게 잊은 채 똑같은 책을 다시 사서 읽다가 “어라 아무래도 예전에 읽은 듯한데?” 하고 떠올리면서, “아름다운 책이니 다시 살 만하지” 하고 여기는 길이 하나요, “칫, 돈을 날렸잖아!” 하고 툴툴거리는 길이 둘입니다.


  마을에 책집을 여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일하며 돈도 벌고 아름다운 이웃이며 동무이며 글님을 만날 뿐 아니라,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보람까지 누리는 길로 바라볼 만해요. 힘들거나 지치는 날이 있을 테고, 책손이 뜸한 날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책집에 건사한 모든 책이 저마다 다른 소리로 나긋나긋 노래를 들려줍니다. “걱정은 언제나 걱정을 낳으니, 늘 노래를 낳는 노래를 불러 봐. 이 마을에 지은 이 사랑스러운 책숲을 그려 봐.”


  2011년 가을부터 2017년 봄을 앞둔 때까지 두 아이를 돌보며 건사한 살림을 바탕으로 찍은 사진을 추슬러서 조촐히 사진책을 여미어 보았습니다. ‘놀이하는 시골순이·시골돌이’ 모습을 담았는데요, 두 아이하고 뚝딱뚝딱 나무판을 큼직하게 짜서 사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꾸러미를 포항 〈달팽이책방〉 한켠에 붙여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큼직한 사진판을 어떻게 보내나 한참 망설인 끝에 손수 들고 가 봅니다. 집에서 마을 앞으로 들고 나오는데 땀이 납니다. 시골버스에 겨우 실어서 읍내로 나오고, 읍내에서 순천으로, 순천에서 다시 포항으로 시외버스를 갈아탈 적에는 짐칸에 싣습니다. 포항에서 버스를 내리고서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택시 일꾼은 〈달팽이책방〉 있는곳을 못 찾고 빙글빙글 돕니다. 아무튼 어깨 빠질 만큼 묵직한 ‘사진 나무판’ 석 자락을 용케 짊어지고서 어여쁜 마을책집에 이르렀습니다.


  책집지기님이 건넨 홍차를 마시면서 숨을 돌립니다. 사람들이 자가용을 모는 까닭을 조금은 어림할 만합니다. 이런 큰짐을 시외버스나 기차나 택시를 갈아타면서 낑낑대자면 꽤 힘들겠지요. 그러나 저는 우리 두 아이를 온몸으로 돌보았어요. 천기저귀에 아이 옷가지를 잔뜩 짊어졌고, 유리병을 챙겼고, 주전부리나 도시락을 건사해서 다녔어요. 바리바리 꾸린 짐에 아이들이 다리가 아픈 티를 내면 덥석 안거나 업으며 걸었는데요, 안기거나 업힌 아이들이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주니, 이 노래로 기운을 새로 내면서 한 발짝 두 발짝 내딛었어요.


  새삼 돌아보지만, 이런 걸음이었기에 지난 2016년에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같은 책을 써낼 만했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숲바람을 먹고 뛰놀도록 돌보는 시골살림을 꾸리면서 쪽틈을 내어 가까스로 조금 읽은 책이 아직 아이들이 없던 무렵 혼자 숱하게 책집마실을 다니며 읽던 책하고 댈 수 없도록 즐거우면서 사랑스러웠네’를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이란 몇 마디로 간추렸습니다.


  사진판을 한켠에 걸고, 사진책을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이제 어깨가 풀리고 손에 기운이 돌기에, 포항으로 오는 길에 새로 쓴 동시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씁니다. 어여쁜 〈달팽이책방〉에 바치는 노래예요. 살몃살몃 골마루를 거닐면서 《산딸기 크림 봉봉》(에밀리 젠킨스 글·소피 블래콜 그림/길상효 옮김, 씨드북, 2016)을 구경하고 《내가 사랑한 여자》(공선옥·김미월, 유유, 2012)를 들추고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니시야마 마사코/김연한 옮김, 유유, 2017)을 기웃거립니다. 《다시 또 성탄》(황벼리, 작은눈, 2015)을 넘기다가 《식물생활》(안난초, 2016)을 쥡니다. 사진잔치를 펴려고 들고 온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가벼운 등짐에 담을 책이 하나둘 쌓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짓고 가꾸는 살림치고 안 예쁜 살림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소꿉놀이를 비롯해서, 할매들 밭자락이며, 할배들 논두렁이며, 〈달팽이책방〉 같은 마을책집이란 마을 한켠에서 가만히 노래하면서 숲바람을 끌어들이는 상냥한 숨결이라고 느껴요.


  포항이라는 고장은 〈달팽이책방〉이 있기에 어깨를 펴면서 즐겁게 하루를 맞이할 만하지 싶습니다. 책 한 자락하고 찻물 한 모금이 어우러진 이곳은, 달팽이처럼 달달하고 달곰하겠지요. 책집이 조촐히 깃든 마을은 달팽이마냥 차근차근 아름다이 빛나는 걸음걸이가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